![]() |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또는 남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등의 극단적 인간행동에 대한 해석은 개인의 속성 탓으로 돌리거나 아니면 사회적 책임으로 해석한다. 자살의 원인이 사회에 있음을 증명하려 한 뒤르켐의 주장은 여러 가지 논리적 취약성이 있다. 그러나 뒤르켐 이전에는 잘하거나 못하거나 인간 행위가 모두 개인의 속성으로 치부한 것과는 달리, 그가 일깨워 준 것은 현대 사회에서 나타나는 비정상적 행위의 원인들이 사회에 근거하고 있음을 보여준 점이며 이는 커다란 학문적 기여라고 생각한다.
정치가의 죽음이 그것도 한나라의 최고 지도자가 된 사람의 죽음이 노무현 전 대통령처럼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으로 귀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정치의 중심에 선 정치가들의 극적인 죽음은 대부분 타인에 의한 즉 암살의 형태로 귀결되었으며, 먼 옛날의 사례들을 들추지 않더라도 인도의 간디, 미국의 케네디, 필리핀의 아키노 등의 죽음이 그러했다. 이들의 죽음은 각 사회에서 정치적 전환의 커다란 계기를 만들었다. 이들 죽음의 공통적 결과는 이러 저리 쪼개진 분쟁과 갈등을 거듭하는 극한의 상황에서 벗어나서 사회적 대통합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이들 모두 생존당시 행했던 모든 잘못을 사회가 덮어주고 그들이 한 좋은 점을 부각시켜 주었다는 점이다. 만일 그들이 그런 비극적 죽음을 맞지 않았더라면 험난한 정치적 삶을 살았을 것이고, 지금과는 전혀 다른 역사적 평가가 있었을 것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기간 내내 많은 비난과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달리 해석하면 그는 무엇인가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들을 들추어내서 고쳐보려 애썼다는 반증이다. 말만 무성했던 약자에 대한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새로운 정책들을 모색해 보았고, 권력과 돈의 교환을 차단해 보려 했고, 한국사회의 독특한 연고주의의 틀을 깨보려 하는 등 ‘당연한 것이라 여겨졌던’ 많은 사회적 문제들을 해결하려 했다. 그러는 동안 그는 많이 아파보았고 또 동시에 많은 사람들을 아프게 했다. 그는 문제를 제대로 보았지만 너무 성급했고 가볍게 일을 처리하려 했다.
문제는 지금부터이다. 민주당의 경우 지지율이 올랐다고 좋아할 일이 전혀 아니며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한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따질 일은 아니다. 이는 그의 비극적 죽음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에 불과하며 또 다른 분열을 가져올 수 있다. 한나라당의 경우 이제 그만 사리사욕에서 벗어나 패거리 싸움을 끝내고 국민들이 바라는 것이 진짜 무엇인가를 보아야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잘못을 덮어주고 그가 우리 사회를 바꾸려고 한 정책들을 차분히 평가해보고 옳은 것이라면 지속해야 한다. 만일 우리의 정치권이 그의 죽음을 분열된 한국사회를 통합하는 계기로 삼는다면, 그런 정치적 이용은 환영할 일이며 한국사회의 미래는 매우 밝다. /공유식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