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바스에 빠진 한국정치, 희망은 있는가

남미의 반복되는 쿠데타의 역사를 보면서 “역사는 두 번 반복한다. 처음은 비극적으로 두 번째는 희극적으로”라는 말이 인용되었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그 역사는 반복하면서 인간에게 교훈을 남긴다. 다만 처음에는 비극으로 나타나고, 두 번째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2009년 7월23일의 미디어법 처리 과정에서 국회 의장석을 둘러싸고 있는 국회의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구절이 생각난 것은 2004년 3월12일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 소추 결의안 의결 모습이 연상되었기 때문이다. 장면만 보면 마치 비디오를 재생하는 듯하다. 다만 주도했던 한나라당이 당시는 다수 의석을 점하고 있었으나 야당인 시절이었다. 지금은 다수당이면서 집권당이다. 당시는 투표함에 투표를 했지만 이번에는 전자투표를 하였다. 그때 모습을 보면 투표함을 안고 통곡하는 의원의 모습이 보였는데, 이번에는 대리투표 등의 논란이 야기되고 있다. 이번의 장면에서 역설적이게 쓴 웃음이 나오는 것은 반복되는 역사라는 생각에서 이다.

우리의 국회는 지금 너무나 무능력하다. 계류 중인 3천500건의 법률안은 하나도 처리를 못했다. 262조원에 달하는 2008년도 결산서는 겉장을 열어보지도 못했다. 더군다나 평소에 국회의원 한명 한명이 헌법기관이고 독립성을 가진다고 주장을 하면서 대리투표가 시도되었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국회의원을 선량(選良)이라고 한다. 뛰어난 인물로 뽑힌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조정하여 국가적 정책 의지를 확인하는 것은 보람 있는 일이고 영광스러운 일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2009년 여름, 지역에서 그렇게 기대를 가지고 뽑힌 사람들이 보여주는 국회에서의 집단행동은 이성을 상실하고 있다.

미국에서 1887년 행정의 기능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행정과 정치를 구분하면서 행정은 성급하게 결정하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에 국회에서는 좀 더 찬찬히 그리고 꼼꼼히 문제를 천착하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했다. 그러나 거꾸로 지금 우리 국회는 무엇에 쫓기고 있다. 오랜만에 집권을 한 원내 다수당은 오만에 빠져 있고, 실권한 야당은 상실감과 편견에 빠져있다. 오만과 편견의 극한 대립 각이 날을 세우고 서로를 전혀 인정하지 못한 채 국회를 지배하고 있다. 빙하의 이동시에 발생하는 균열인 크레바스(crevasse)에 빠지면 헤어나지 못한다. 3김(金)이 후선으로 물러나고 민주화가 이루어진 권력 이동기에 발생한 한국 의회정치의 크레바스는 모든 에너지를 집어 삼키고 있다. 3김 시대가 후선으로 물러나고 민주화가 달성된 다음에 정치는 구심력과 원심력을 모두 상실했다. 국민을 끌어당기는 아젠다를 설정하지 못하고, 원내 정치력을 확보하지 못해 파편에 가까운 파벌정치 구도가 진행되는 정당정치 지형에서 이런 극한 대치 상태는 이번 18대 국회 내내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2012년까지 우리는 이런 국회의 모습에 적응을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우리 사회의 희망은 젊은이에게서 나오고 있다고 믿는다. 국회의원들이 극한 대치와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던 시각에 우리나라 청소년들이 과학국제올림피아드에서 당당히 실력으로 2등과 3등을 하였다. 많은 청소년들이 더운 여름날 세계 각국에 자원 봉사를 하기 위해 떠나고 있다. 그들은 세계 역사의 흐름과 호흡을 같이 하고 있다. 젊은 인재들이 만든 전자 제품, 선박 그리고 자동차는 세계시장에서 인정을 받고 있다. 그 힘이 우리 국력의 원천이다. 한국에서 내수산업에 만족하는 업종이 가장 경쟁력이 없다고 한다. 독점과 폐쇄의 체제에 안주하는 마지막 내수산업이 정치이다. 그 정치가 궤변과 변명으로 자기 합리화를 할 것이 아니라, 미래와 세계를 향해 땀 흘리는 젊은이에게서 지혜를 얻고 겸허한 자기반성을 하기 바란다. /이원희 한경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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