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놀이

어느 정도 불편을 감수하고 시골 비슷한 교외로 이주한 지 십 년이 되었다. 초창기 성기고 어설펐던 정원이며 텃밭 모습이 자리를 잡아가니 바라보기가 조석으로 즐겁다. 변한 것은 집 주변 풍광만이 아니다. 바라보는 집안 식구들의 마음도 변하였다. 너무 촌사람 되지 말자며 한 달에 몇 번은 서울 나들이하자던 마음은 이제 일 년에 몇 번 서울 나들이가 귀찮아지는 마음으로 변하였다. 우리 집식구들은 이렇게 변하였는데 찾아오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많이 던지는 질문은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여기 몇 평이에요?” 더하기 “평당 얼마 해요?” 이다. 텃밭에서 뽑은 상추에 장독에서 퍼온 된장을 얹어 한 술 맛나게 쌈밥을 먹고 있는데 느닷없이 “그 식사 얼마짜리예요?”라고 묻는 격이다. 논리적으로는 앞뒤가 안 맞지만 “드셔 보세요. 맛나요”라고 답할 수밖에 없듯이 나의 대답은 대개 일정하다. “살아보니 좋아요.”

나의 답변이 우문현답(愚問賢答)인지 아니면 현문우답(賢問愚答)인지는 모르겠지만 둘러보면 세상이 어느덧 숫자로 표시해야만 믿음이 가는 곳이 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새삼 놀란다. 온갖 경제지표는 전문가조차도 따로 공부해야 이해가 될 지경에 이르렀으니 말할 나위 없고 연봉 얼마짜리 운동선수, 학교 성적이 몇 등, 수능 몇 등급, 세계 몇 위 대학, 몇 번 도로를 따라 달리는 몇 번 버스 노선, 은행 비밀번호…. 끝이 없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 그렇게 얘기해도 대한민국 행복지수를 세계에서 몇 등이라고 확인해야 그리고 매년 한 단계라도 더 올려야 직성이 풀린다.

숫자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다. 숫자는 깔끔하고 명확하며 논리적이고 편리하다. 숫자로 표현 가능한 현상을 말로 풀어쓴다면 우리네 일상은 장광설의 엉클어짐이 못내 불편하여 숫자를 다시 쓰지 않고는 못 배길 지경이 될 것이 분명하다. 숫자가 우리네 일상사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숫자의 본디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숫자를 과신하여 숫자놀이에 빠지는 경우이다. 우리 주변에서 가장 흔하고 영향력 있는 숫자놀이가 통계이다. 통계는 복잡다단한 사회현상을 일목요연하게 요약 정리하여 판단을 돕는다. 반면 통계는 숫자 그 너머의 세계에 존재하는 의미세계를 보지 못하도록 부추긴다. 이런 의미에서 통계에 있어 중요한 사실은 “통계는 거짓”이라는 사실이 아니라 통계는 삶에 있어 중요하지 않은 모든 것에 대하여 진실을 말하는 반면 중요한 모든 것은 보지 못하도록 부추긴다는 사실이다.

정부는 금융위기 이후 대한민국의 경제가 가장 빨리 좋아졌다고 갖은 수치를 들이대며 무지한(?) 서민들을 가르치려 드는데 정작 서민들은 나아진 게 없다는, 아니 더 어려워졌다는 이 모순을 어찌 해석해야 옳은가? 너무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내가 가르치고 연구하여 밥 벌어 먹고 사는 대학의 요즘 행세를 보자. 숫자뿐 아니라 숫자 너머의 세계도 볼 줄 알 것이라고 (아니, 보아야 한다고) 그나마 주제넘게 대접받고 있는 대학이라는 조직에서조차 숫자놀음에 제 스스로 앞장서서 희롱당하고 있다. 어느 중앙일간지의 대학순위평가에 안달하는 우리네 대학의 모습이 애처로워 하는 말이다. 자기가 만든 잣대로 대학을 평가하여 한 줄로 세우는 그 신문은 대학으로부터 평가를 받으면 몇 등이나 할까 궁금하다. 배부른 소리나 하는 당신은 이런 모순을 해결할 무슨 대단한 묘수라도 있냐고 되묻는다면 다음 번 칼럼에서 답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기대하시라.

/강명구 아주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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