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은 원격 진료나 u헬스라는 말이 낯설겠지만 의료계에선 논란의 중심에 있는 문제다. 정부는 한국개발연구원의 의료산업화 연구 결과를 토대로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의사와 환자사이에 진료와 처방을 허용한다는 법을 입법예고까지 한 상태이고, 의사들은 기술적인 문제와 진료의 안정성에 한계를 들어 반대하고 있다.
진료는 눈·귀·손·입을 통한 시진·청진·문진·촉진이 완벽히 조화를 이룰 때만이 가능하다. 눈동자가 노랗게 변한 환자를 보고 황달을 알 수 있고, 환자의 작은 손동작으로 심리 상태를 짐작하며, 간을 만져 보고 간경화나 복수를 찾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이 모니터 속의 환자를 보면서도 가능하다는 것이 아직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분명 현대의 기술로는 한계가 있다. 단순히 혈압, 혈당과 심전도 정도를 원격으로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진료를 인정한다면 전화 의료 상담 이상의 가치는 없다.
또한 진료 행위에는 책임이 따른다. 책임질 수 없다면 진료해서는 안 된다. 물론 법안에는 대면 진료에 준하는 책임을 진다고 되어 있다. 기술은 미비한데 단지 법에 규정한다고 책임이 똑 같다는 것은 인정할 수도 없고 인정 될 수도 없는 것이다.
원격진료는 교도소 같은 특수한 경우라도 환자의 옆에는 항상 의사가 있어야 한다. 또 전문 분야가 아닌 질환에 대한 원격지 의사로부터의 조언을 받는 정도로 인정돼야 하고 현재의 기술발전 수준도 그 정도가 합당하다. 독자적으로 환자가 의료적인 상황을 진료의사에게 알릴 정도가 되려면 상당한 의학적 지식을 갖추어야만 한다. 안전장치가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환자만 혼자 두고 진료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수밖에 없다.
심평원의 관계자는 진료실에서 진료보다 더 높은 비용을 줄 수 없다고 하는데, 의료를 제공하는 쪽에서는 원격진료를 하는 데 투자된 화상 장비나 진단 장비 때문에 더 높은 비용을 줘야 한다고도 한다. 기술적 수준이 아직 대면 진료만큼 완벽하지 못하면서도 비용을 훨씬 더 들여야 할 형편인 것이다. u헬스라는 그럴듯한 표현을 앞세운 의료 장비 업체는 이익을 보겠지만 이 비용은 고스란히 환자의 주머니에서 나올 수밖에 없다.
모 정보 통신 업체의 이사는 이번 법안의 지연이 u헬스 업계 해외 시장의 진출 시 중요한 참고 자료 확보의 지연을 의미한다고 했다. 이는 아직 안정성과 효용성의 데이터가 확보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미국이나 선진국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법까지 만들어 전 국민을 상대로 임상 시험을 하겠다는 위험한 생각이다. 우리국민은 검증되지 않은 방법의 임상 시험 대상이 아니다.
불필요한 규제는 당연히 없어져야 하겠지만 꼭 필요한 규제도 있다. 그러한 규제를 만들 때의 의미를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신중하고 정확한 진단이 없다면 치료도 있을 수 없고 환자의 건강도 지킬 수 없다.
지난 의약분업도 정부와 시민 단체는 의료비 감소와 환자들의 편의가 증가할 것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의사들의 반대를 무릅쓰면서 시행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것이 얼마나 우스운 거짓말이었는지 알고 있다.
한 번 만들어진 법은 되돌리기도 힘 들고 비용도 많이 든다. 경제 논리로 만들어진 한국개발연구원의 자료만으로 의료법을 개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모두에게 공개 되고 진료의 당사자가 자유롭게 참석하는 시범 사업을 해야 한다. 또한 비용과 효용성에 대한 자료도 확보 되고 모두가 인정할 만한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법의 개정을 연기하고 기술발전을 기다리는 것이 현명하다. 재판장에 가지 않고도 원격으로 증언과 변론이 가능한 기술 발전이 온다면 그때쯤이 원격의료도 가능한 시점이 될 것이다.
/류 센 경기도의사회 홍보이사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