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시 교하읍에서 공장을 운영하던 박모 사장(47)은 교하읍 일대가 운정3지구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되자 공장을 담보로 30억원을 대출받아 인근에 공장 부지를 사두었다가 요즘 호된 몸살을 앓고 있다. 정부 말만 믿고 덜컹 빚을 내 이전부지를 마련했는데 보상은커녕 개발될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가운데 이자만 수억원에 달해 쫄딱 망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양주시 광적면에서 농사를 짓고 살던 김모씨(59)도 이 지역이 택지개발지구로 지정, 8억원의 대출을 받아 대토(代土)로 다른 곳에 땅을 샀다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보상 보류에 이어 사업 전면 재검토 발언이 나오면서 홧병에 몸져 누었다.
요즘 양주시 광적면의 풍경은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다. 지난 2004년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된 이후 보상을 코앞에 둔 상태에서 사업 포기설이 나돌면서 이곳 농민과 상인들은 파산 직전 상태에 이르렀다.
이 같은 상황은 미군기지 이전지역인 평택 고덕지구도 마찬가지다. 고덕국제신도시사업은 정부가 주한미군기지의 평택 이전에 따라 진행하는 평택지원사업의 핵심이다. 특별법까지 제정해 ‘한국 속의 미국 도시’로 개발한다며 요란스럽게 장밋빛 청사진을 발표하더니, 최근 LH공사의 사업 포기설이 나돌자 주민들은 공황 상태에 빠져 있다.
재산권 행사 제한에다 이전할 대체토지 등을 마련하느라 수억에서 수십억원의 대출을 받고 이자를 갚느라 힘겹게 버티고 있는데 보상을 3번이나 연기한 끝에 이제 와서 사업을 포기한다면 죽으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아우성이다.
이처럼 도내 곳곳에는 막대한 부채로 허덕이는 한국토지주택공사의 일방적인 ‘사업 보류’ 선언으로 울분을 토하는 주민들로 들끓고 있다.
최근 경기도에 따르면 LH공사가 시행을 맡은 도내 택지개발사업지구의 토지보상이 지연되고 있는 곳은 평택, 양주, 고양, 파주, 의정부, 안성, 화성, 남양주 등 9곳에 보상예정금만 9조원에 이른다.
보상 지연은 지난해 하반기 미국발 금융위기로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고 경쟁적으로 택지개발지구를 지정해왔던 옛 주택공사·토지공사의 부채가 85조원이 넘는 등 자금난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LH공사는 재무 부실을 해소하기 위해 일부 개발사업에서 손을 뗄 전망이다. 현재 추진하거나 계획 중인 사업의 포기·축소·연기 등을 포함하는 우선순위 조정 작업을 벌이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역주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주민들이 원해서 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된 것도 아니고, LH공사가 맘대로 추진해 재산권 행사 등을 묶어 놓더니 수년이 지나 또 맘대로 사업을 못하겠다고 손을 들고 있는 것이다.
이에 경기도지사와 해당 자치단체장, 국회의원들까지 비상이 걸렸다.
평택의 원유철, 정장선 의원은 쌍용차에 이어 또다시 발에 땀이 날 정도로 뛰며 국무총리, 국토해양부 장관, LH사장 등을 만나 ‘계속 추진’을 주장하고 있다. 정부가 약속했으니 당연한 것인데도 사정 아닌 사정을 하며 설득과 촉구에 나선 것이다.
이는 김문수 지사도 마찬가지로 김 지사는 고덕·광덕지구를 방문, 주민들의 애타는 하소연을 청취하고 원래대로 보상될 것임을 시사했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여전히 불안해하고 있다.
LH공사의 일련의 행태를 보면서 국민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마구잡이식으로 개발을 추진할 때는 언제고 무책임하게 ‘못하겠다, 늦추겠다, 나중에 봐야겠다’는 식의 행태를 어찌 이해하란 말인가.
정부가 약속을 위반하고 국민을 우롱한다면, 그래서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한다면 그 나라의 꼴은 어찌될 것인가.
LH공사는 이미 벌려놓은, 보상을 코앞에 둔 사업에 대해 최선을 다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데스크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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