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치료 중에 생명, 신체 및 재산상의 피해를 본 환자의 고통과 억울함은 그 무엇으로도 보상 받기 힘들 것이다. 환자의 마음도 이해하지만 치료를 담당하는 의사의 마음도 한편 이해를 구하고 싶다.
의학은 한 점 실수 없는 신의 영역이 아니다. 현대의학이 모든 환자의 질환을 다 알 수도 없고, 치료 할 수도 없다. 또 인간이 하는 일이기에 실수가 있을 수도 있다. 항상 최선을 다하지만 의학적 지식의 한계를 느낄 때도 많다. 치료나 진단 과정이 매번 책이나 치료 지침의 정해진 수순을 보이는 경우는 많지 않고 여러 가지 변수에 의해 다양한 경과를 보여 당황스러울 때가 많다. 일반인들의 입장에서 쉬운 진단명 중에 하나인 충수염만 하더라도 증상의 변화가 다양해 의사들 사이에 천개의 얼굴을 가졌다고 이야기 되곤 한다. 잘해야 본전이고 잘 못하면 쉽게 돌팔이 소리를 듣게 하는 병인 것이다.
치료비로 수만 원을 받은 환자라도 수억 원의 과실 보상을 해줘야 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즉 수만 배 배상을 해야 하는 것이다. 이는 과장된 것이 아니고 실제 산부인과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보통의 사람들이라면 이런 위험을 회피하면 그만이지만, 의사가 이런 생각을 한다면 치료에 소극적이고, 예후가 나쁠 가능성이 있는 환자는 진료를 하지 않을 것이다. 즉 예후가 나쁘게 예상될수록 치료비용과 치료 시간이 증가하게 된다. 우리나라는 의료 보험이라는 틀 속에 진료가 이루어지고, 비용도 정해져 있다. 의사가 유연성을 갖고 진료하는 것에 한계가 있고, 위험 비용을 환자에게 요구할 수 있는 방법도 없는 상황이다.
의료분쟁은 의학의 한계성과 비용 효율을 추구하는 건강보험의 양 틀에 갇혀 항상 발생 가능성이 매우 높고, 실제 많이 발생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당사자 간의 합의나 물리력으로 분쟁을 해결 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최후의 해결책인 법원의 판단을 구하는 경우도 있지만 환자의 입장에서 뿐만 아니라 의사의 입장에서도 만족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법원의 결정에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고, 법률적 판단이 의학적 과실을 평가 하는 것이 항상 정확한 결과를 낼 것이라는 것은 우리의 과도한 기대일 뿐이다.
의술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의사의 이기적 욕망을 채워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합리적으로 환자와 의사 사이에 이해와 재화를 나누는 것이다. 일반적인 상술의 잣대를 가지고 분쟁을 조정하려 한다면, 정말 의학이 상술만 남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는 뜻이다.
지난 해 12월 29일 의료사고 피해 구제 및 의료분쟁 조정 등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보건복지가족위원회를 통과했다. 빠르면 오는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1988년 대한의사협회가 의료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을 건의한 이래 20년 만에 의료분쟁의 조정제도를 갖추게 되는 것이다.
법적 소송 전에 조정위원회를 통해 환자와 의사간에 분쟁 해결의 기회를 제공하고, 또한 의료사고감정단의 사실 조사를 받을 수도 있게 된다. 보건의료인이 충분한 주의의무를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발생한 의료 사고에 대해서는 국가가 보상하게 된다. 배상공제조합을 통한 배상도 더욱 활성화 될 것이다. 입증책임에 대한 문제로 시민단체의 반대도 있다고 한다.
오래 기다렸던 만큼 새로운 제도가 잘 시행되어 억울한 환자도 없고, 의사의 소신 진료를 꺾지도 않았으면 한다. /류 센 경기도의사회 홍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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