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권리

10년 가까이 외래에서 치료를 받던 할아버지 환자가 최근에 돌아 가셨다. 1년 전 대장에 혹이 발견됐지만 최근에야 제거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수술 후 몇 개월을 못 버틴 것이다. 혹이 발견되면서부터 수술을 권유했지만, 마무리 지어야 할 일이 있다면서 여러 번 거절하곤 했었다. 돌이켜 보면 수술 후 회복을 못하는 상황을 예상해서인지 인생을 마무리할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의사로서는 빨리 수술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되지만 칠십 노인의 마음을 상상해보면 빠른 수술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있었던 것 같다.

 

나이가 많은 말기 암 환자의 경우에는 보호자들이 환자의 심리적 스트레스를 피하기 위해 진단명을 숨기기도 하고 치료 과정을 자세히 알려 주지 않기도 한다. 환자는 짧은 여생을 병상에서 보내며 왜 죽게 되는지조차 모르고 죽는 경우도 있다. 치료 가능성이 매우 낮은 치료보다는 인생의 마지막 시간에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는 선택권조차도 없어지는 것이다. 치료 가능성인 낮은 치료를 위해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면서 죽음을 맞는 것과 인생을 마무리하고 거룩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 중에 어느 것이 더 좋을까?

 

지난달 10일에는 우리 사회에 존엄사 논의를 확산시킨 김 할머니가 운명했다. 대법원의 존엄사 인정 판결에 따라 인공호흡기를 뗀 지 201일 만이었다. 대법원은 짧은 기간에 사망할 것이 예상되는 환자에게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계속 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치는 것이며 평소 김 할머니의 연명 치료 거부의사를 존중해 존엄사를 인정 했다. 물론 인공호흡기를 떼고도 긴 시간 동안 생존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돌이켜 보면 의식 없이 인공호흡기에 의지해 생존했던 시간과 법원의 판결을 받기까지의 과정, 또 인공호흡기 없이 생존한 201일 모두 김 할머니가 결정할 수 있는 일은 없었던 것이다. 또한 평소의 할머니의 연명치료 거부 의사가 반영되었다 하더라도 수많은 기회 비용과 판결까지의 가족 간의 갈등이 있었을 것이고 모두에게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을 것이다. 하늘나라의 김 할머니가 원하던 것은 결론적으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김 할머니는 평소 소신을 밝혀서 판결의 도움을 받았지만 그러한 의사 표시를 하지 않았다면 법원의 도움도 구할 수 없었다.

 

노인 환자들은 자주 살아 있는 지옥이라는 표현을 한다. 특별히 할 일이 없는 시간을 보내야 하기도 하고 요즘에는 혼자 사는 경우도 많아 세끼 식사를 챙기고 집안일을 해야 하는 삶이 힘들다는 뜻이다. 그 나이가 되면 살아 있는 것이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다. 단순히 평균 수명만 늘어났을 뿐 늘어난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고 채워 나갈지는 준비가 안 되어 있어 생기는 문제이다.

 

우리의 모든 가치관은 삶의 기간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렇지만 삶의 질 또한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생각과 합의는 이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의사협회와 병원협회는 지난해 10월 연명 치료 중단 지침을 마련해 발표했다. 말기 암 환자, 후천성 면역결핍증 환자, 만성질환이 말기 상태인 환자 등에 대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의료계의 지침은 법적인 효력이 없는 자체규범에 불과하다. 존엄사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을 제시하는 존엄사법 제정을 서둘러 혼란을 막아야 한다.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가는 권리에만 합의를 가지고 있지만 이제는 죽음의 권리에도 생각해 볼 시기가 된 것 같다.

 

죽음의 권리는 너무 생소한 표현이다. 살 수 있는 권리는 많이 들어봤지만 죽는 것에도 권리가 있을 수 있을까? 언제, 어떻게, 어디서 한번쯤 생각해 볼 만하다.

 

/류센 경기도의사회 홍보이사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