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아이들에게 후원자를 소개하다보면 아이들로부터 편지를 받아 후원자에게 전해주는 경우가 많이 있다. 도움을 받은 아이들은 후원자께 감사하다는 말과 자신의 학교생활, 취미, 특기 등을 중심으로 편지를 구성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형태다. 그런데 최근에 도움을 받은 아이가 그동안 자신을 도와준 것이 너무 고맙다면서 편지 한 통 보내왔다. 노름으로 엄마와 이혼한 아버지는 아이를 할머니에게 보내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아이를 양육할 수 없게 되자 다시 엄마에게 떠맡기면서 어머니 카드를 몰래 가지고 나가 엄청난 카드빚을 지고 8세 때부터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연락이 없다. 그 뒤로 집이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했고 화장실도 부엌도 없는 흔히 쪽방이라고 부르는 1평 남짓한 작은 방에서 어머니는 폐결핵과 대장결핵이라는 무서운 병이 들었다.
아이의 어린 시절은 대한민국의 50대 이상의 사람들이 겪었을 법한 어려운 시기를 보는 듯하다. 희망도 꿈도 없던 어린 시절의 악몽 같은 생활은 초등학교 6년 동안 내내 변함이 없었다. 중학교를 갈 수 없을 정도로 너무 힘들어지자 어머니는 아이의 손을 잡고 “엄마가 정말 미안한데 중학교 포기하면 안될까? 미안해. 정말”이라고 하면서 눈물로 밤을 보냈다. 학업을 포기해야 할 바로 그 무렵 어린이재단에서 교복 값과 등록비를 후원해주어 중학교를 진학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마음이 담긴 감사편지를 보내왔다.
중학교에서 열심히 공부하겠노라고 얼음처럼 차고 단단한 결심을 하지만 학원에서 선행(미리공부)을 해오는 보통의 아이들도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성적이 떨어져 점점 공부에 흥미를 잃게 되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자신을 도와준 분들과 병마에 시달리는 어머니에게 실망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죽을 각오로 미친 듯이 공부를 하게 된다.
‘학교에서는 야자를 하고 야자가 끝나면 도서실을 가고 도서실이 쉴 때는 집으로 와 졸릴까봐 창문을 모두 활짝 열고 반팔 반바지 차림으로 입술이 파랗게 되어 공부를 했습니다. 또한 시험기간에는 밤을 새었고, 시험 보는 모든 과목을 공책에 따로 정리했으며 항상 교무실에 가 선생님께 모르는 것을 여쭈어 보며 공부를 했습니다. 그렇게 3년 동안 열심히 공부해서 이번에 제가 꿈꾸던 대학인 연세대학교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소름이 돋았다. 어려움을 열정과 의지로 지혜롭게 극복한 아이에게 감동의 박수를 전하고 싶다. 아이는 극한 환경에서 자신도 모르게 생존본능을 찾은 듯하다. 보통의 아이들은 수십 번은 포기했을 상황이겠지만 아이는 현재를 극복하고 자신의 미래를 희망으로 수놓았다. 아이는 어려운 환경과 타협하지도 포기하지도 않았다.
아이가 가장 어려워하는 시기에 적절한 도움이 되었던 것은 재단입장에서도 매우 흐뭇한 일이다. 이것이 나눔의 묘미다. 나눔은 누군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것이다. 작은 나눔이 큰 감동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아이의 감사편지는 많은 사회복지사들에게 도움은 받은 아이들이 긍정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을 준 것이다. 이 한통의 편지에서 사랑보다도 더 사랑스러운 감동을 받았다.
아이의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다. 어려운 형편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희망을 가지고 꿈을 키워갈 수 있게 롤모델(Role Model)이 되고 싶어 한다. 또한 자신이 받은 사랑에 2~3배로 사회에 봉사하며 베푸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TV 드라마나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얘기를 접한 우리 직원들도 아이가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되기로 했다. 자신의 재능과 시간을 자원봉사로 활용할 수 있게 안내하고 있다. 아이가 작가가 되어 자신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승화시키길 기대한다. 아이의 이야기를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어 편지에서 표현하지 못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
/권혁철 어린이재단 후원자 서비스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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