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프랑스의 문예비평가이며 기호학자인 롤랑 바르트는 그의 저서 ‘카메라 루시다’에서 사진의 본질은 내면성이 없고 표면적 정보만 있을 뿐이지만,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기에 파토스적인 것의 감성과 분리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일반적인 것인 스투디움과 보편적으로는 코드화될 수 없지만 본인만이 감지하는 작은 자국인 푼크툼에 대해 쓰고있다.
한때 나는 사진에 푹 빠져있었고, 강화로 이미지 사냥을 가던 날이었다. 강화 어디쯤에 흙먼지 뒤집어 쓴 채 시간을 놓쳐버린 시계가 걸려있는 버스정류장이 눈에 들어왔고 그곳을 카메라에 담았다. 액정화면으로 그 영상을 다시 보는 순간 내 마음은 기억조차 없던 어느 장소로 단박에 옮겨갔다.
대학 졸업반 여름방학 때였다. 다행히 지방 출신의 친구가 내게는 여럿 있었다. ‘구멍난 주머니에 두 주먹을 찔러 넣고···하늘 아래 나는 걸었다’, ‘나그네, 오직 떠나기 위해서 떠나는 나그네들’ 같은 랭보나 보들레르의 시를 외우면서, 우리는 떠나기 위해 떠나는 나그네가 되기로 하였다.
그렇게 천국을 속속들이 뒤지고 2학기가 시작되기 전 8월 중순경 서울로 돌아오는 여정이었다. 우리는 야간열차를 타고 다시 버스로 갈아타곤 했다. 비포장도로가 많아 덜컹거리며 가는 길에 황토흙먼지에 겹겹이 싸여 손 흔드는 사람 태워주던 길, 그래도 간혹 ‘뻐스정거장’이란 팻말이 있는 정류장이 그 길에 있었다. 지금 이 곳이 그때의 ‘뻐스정거장’과 흡사했다. 닳고 더러운 긴 의자, 그 뒤쪽에 슬쩍 보이는 오물자국들. 이 푼크툼은 나에게 연민의 감동을 불러일으켰다.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여행을 좋아하나 여행지를 사진에 담아 두지는 않는다고, 기억을 위해 꼼꼼히 기록하지만 눈앞의 풍경은 자신이 사진기가 되어 담아둔다고 말하듯이 이상적인 여행이란 마음속에 새겨두는 것인가 보다. 그 때 찍은 사진은 없고 기억 속에 남은 형상만 있을 뿐인 그 정류장으로 카메라 속의 이 영상이 나를 데리고 간 것이다.
대상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하는 인식론의 관점에서 볼 때 피사체는 비체계적인 다른 빛의 푼크툼으로 와 찌르고 상처를 입히기도 하지만, 나른한 행복 속으로 옮겨놓기도 한다. 여름햇살과 흙먼지 속의 ‘뻐스정거장’으로 돌아가게 하듯. /김원옥 인천 연수문화원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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