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수’가 된 노인들

동방예의지국이라 칭송받던 한국 노인 문화의 강줄기를 따라가 본다. 강물이 흐르는 것은 앞 물결이 뒷 물결을 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거 노인을 어르신이라 부르던 극존칭이 상징하듯 노인공경문화가 유교적 충효사상에 바탕을 둔 경로문화가 주류를 이룬다고 보면, 현대사회는 전통문화와 다문화가 혼재된 개인주의에 따른 이기적 편의주의가 사회적 주류를 이룬다.

 

그러므로 노인공경의 효문화가 사라져가고 지금은 지극히 일부에서만 멸종위기종이 된 희귀생물로 연명하

고 있다. 예컨대 부모와의 일시적 동거는 물론, 거동 불편한 부모를 모셔야 하는 일이 생기면 자녀의 다수와 관계없이 때로는 떠넘기고, 회피하고자 다투는 것이 시류의 일반이다. 가족 안에서도 노인에 대한 위상이 이렇게 추락했는데 하물며 사회적 노년세대에 대한 예우는 종적을 감춘 지 오래됐다. 물론 복지차원의 국가예산지원과 사회복지시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고 얼마간의 위안은 된다. 하지만 고속 성장한 경제적 풍요와 이에 따른 폐쇄형 아파트 주거문화의 발달로 극도의 편의주의가 초고층아파트처럼 하늘로 치솟고, 도덕과 윤리에 근거를 둔 노인공경문화의 전통이 철거민 주택처럼 팽개쳐진 꼴이다. 국민적 관심사인 환경보호운동이 희귀종 풀 한 포기조차 살리려 애쓰는데 노인들의 처지는 풀 한포기만도 못해 보인다.

 

대가족문화에서 살아온 노인세대가 많은 자식들을 훌륭하게 길러내고, 돈 버는 방법은 잘 가르쳤으나 정작 가정교육의 뿌리인 효도와 가족애를 계승시키지 못한 책임이 크다고 할 것이다. 어느 방송프로에서 소개한 시어머니의 독백이 마음에 남는다. 남편을 여의고 온갖 잡일을 다해 아들을 대학까지 공부시키고 결혼시켜 집까지 줬는데 경로당에서 친구들에게 자식 자랑하려고 회식비용 한번 쏘려 아들에게 용돈 좀 달라 했더니, 며느리한테 미뤄 며느리한테 용돈으로 2만원씩 몇 번 받았는데 나중에 가계부에 ‘웬수’라고 쓰여 있더란다. 서글픈 이야기가 말해주듯이 효 문화가 깨진 쪽박처럼 뒷마당에 굴러다닌다.  /장성훈 부광노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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