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長)을 토사구팽하는 국민의 힘을 보고 싶다.
토사구팽이란 토끼를 잡고 나면 토끼를 쫓던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라는 고사성어로 현대에도 자주 인용돼 쓰이고 있다. 어원은 이렇다. 와신상담으로 유명한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킨 월나라 재상 범려가 맹주 구천으로부터 영토를 반씩 나누자는 권유를 받자 가족을 데리고 월나라를 미련없이 떠나며 정치적 동지이자 친구인 문종에게 남긴 말이다. 그러나 문종은 범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망설이다 결국 구천이 내린 칼에 목숨을 잃어야 했다. 토사구팽은 초패왕 항우를 물리친 한신이 유방에게 죽음을 당하며 인용한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자치단체장, 광역·기초의원을 뽑는 6·2 지방선거가 한달여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는 8표를 행사하게 된다. 선거에 관심이 없는 유권자라면 어떻게 투표해야 할지, 누굴 찍어야 할 지도 헷갈린다. 여야는 지금 참신한 인물, 개혁 등을 외치며 공천심사를 마무리 하고 있다. 경기도당 공심위는 31개 시·군의 기초단체장 30명을 공천했으며 민주당도 22곳에 대한 공천작업을 마무리 했다. 민노당과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등 군소정당도 후보공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 과정에서 한나라당 경기도당의 공천심사 결과는 충격에 가깝다. 각종 사건에 휘말린 단체장을 제외하고도 현직시장이란 골드급 카드중 5장을 버리고 도의원 90%를 물갈이 했다.
그러나 여야를 막론, 후보공천 결과를 놓고 계파간 힘겨루기, 내천논란마저 일면서 일부 낙천자는 재심의를 상정하거나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고 있다. 일부 이런 저런 이유를 내걸어도 결국 속내는 ‘당을 위해 열심히 일했는데 공천을 하지않느냐’는 항변이며 당으로 부터 토사구팽 당했다고 분개하는 모습으로 비춰진다. 어느 현직 시장은 공천지지도와 경쟁력에서 앞서는 일부지역 후보가 공천에서 탈락하는 것은 당과 정치발전을 위해 불행한 일이다고 말했다.
이 때문이었을까 모 군수는 자리를 얻기 위해 2억원이라는 큰 돈을 바리바리 싸들고 공천에 영향력이 있는 이를 찾아갔다. 그는 결국 철창신세를 지며 나락으로 떨어졌다. 일련의 과정을 보면 어이없다 못해 기가 막히고 허탈해 정치권을 들여다 보기도 싫어진다. 선거때마다 되풀이 되는 이런 구태가 이젠 지겹다. 국민은 없고 그저 국민을 위한다는 그럴듯한 명분만 있을 뿐이다. 좌판(선거)에 놓여있는 생산업체(정당)만 보고 제품(후보)에는 신경쓰지 말라는 뜻인지 참 거북하다. 상대후보가 약하니 당 깃발만 꽂으면 어떤 후보를 내놔도 당선된다는 자만의 결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어느지역도 후보 경쟁력과는 상관없이 현 시장이 아닌 특정인이 내락될 것이라는 소문대로 이뤄진 공천결과를 놓고 불공정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선거후엔 더 가관이다. 장자리에 오른 후보는 을(채무자)의 위치에서 갑(채권자)의 신분으로 바뀐 탓인지 안면을 바꾼다. 이들은 인사권을 제멋대로 단행하고 수억~수조원의 예산을 주무르는 황제같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른다. 어떤 장은 곳간에서 인심난다는 옛말처럼 자신을 위해 애쓴 인물을 적재적소란 그럴듯한 말로 자리를 슬그머니 만들어 준다. 여기에도 국민의 뜻은 없다.
명주암투(明珠闇投)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귀하고 빛나는 구슬을 깜깜한 한 밤중에 던진다는 뜻이다. 속뜻는 이렇다. 아무리 귀한 물건이라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밤중에는 아무도 귀한 물건을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뛰어난 인재라도 재능을 적재적소에 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여야는 부디 4년 뒤 국민에게 팽 당할 장을 선택한 것이 아니길 바란다.
이번 선거에서는 부적합한 후보를 걸러내는 국민의 혜안을 보고 싶다. 국민에게 선택받은 장이 국민을 우습게 알고 국민을 팽시키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팽시키는 힘을 보고 싶다.
/김창학 지역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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