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무장지대

겨울눈비 내리는 아침 인천을 떠났다. 지난 밤 밤샘을 한 나는 어느새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 깜빡 잠이 들었나 보다. 누군가 흔들어 깨어보니 눈이 내리고,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함께 널찍한 강폭을 만들어 흐르는 곳 오두산, 통일전망대에는 꽤나 많은 눈이 쌓였다.

 

진달래꽃 가지 위에 소복이 쌓여있는 눈을 사진으로 담다가 저 멀리 뿌옇게 섬 같은 동네가 눈에 들어온다. 황해도 개풍군 임하리, 참으로 귀에 익은 개풍이라는 지명이다. 안악, 연백, 봉천, 해주, 옹진 등, 평남이 고향인 우리 집안은 황해도와의 인연이 많았다. 일제 말기 왜정의 시달림에 아버지가 황해도로 피신을 하여 갈천 봉천 등 두메산골에서 보낸 적도 여러 번이었다는 어렸을 적에 듣던 지명이다. 그 개풍이 바로 저기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바라보인다. 그 때 들으며 상상하던 곳이 지금 눈 속에서 그림자 처럼 뿌옇게 보인다. 직선거리로 1.5~2km정도, 걸어서 2~30분 거리. 어린아이가 들으며 상상하던 그곳을 군사분계선이 가로막아 지금도 가지 못하는 곳. 예로부터 고구려와 백제의 전쟁터, 남북 간의 치열한 충돌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오두산. 독수리 한 마리가 활공을 하고 있다. 먹고 사는 것 이외에 아무런 정치적 이념이 없어 자유로이 남북을 왕래하는 저 새. 각종 뜨내기 새들이 날아들어 갯벌에 서식하는 동식물들을 평화롭게 먹는 곳. 철새들의 걱정 없는 먹이시간에 나는 질곡의 역사를 생각해본다.

 

다시 버스를 타고 임진각으로 간다. 독개다리라 불렸던 다리. 휴전 후 전쟁포로 1만3천여명이 이 다리를 통해 돌아오면서 자유만세를 외쳤다 하여 명명된 자유의 다리, 돌아오기만 하고 다시는 갈 수 없는 일방통행의 다리다. 이제는 오가는 것 모두 금지된 다리, 철망에 조각종이로 붙여진 가슴 저미도록 보고픈 사연들···.

 

자유의 다리 끝 철조망 그물을 잡고 한 아이가 어른 처럼 북을 바라보고 있다. 저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이렇게 바라만 보면 어떡하나, 가슴이 아프다. 

 

/김원옥 한국문화원연합회 인천지회장·시인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