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에 사는 50대의 김모 여인은 지난 5월 한 남자로부터 “아들이 교통사고로 다쳤다”는 내용의 전화를 받았다. 그 후 그 남자는 재차 전화를 걸어 “아들이 교통사고 난 것이 아니라, 내가 납치하고 있다. 돈을 입금하면 아들을 풀어주겠다”는 말을 했다. 김 여인은 이 남자가 시키는 대로 자신의 은행구좌에서 폰뱅킹의 방법으로 남자가 불러주는 은행 구좌로 500만원을 송금했다. 그러나 나중에 알고 보니 모두 거짓이었다.
또 수원에 사는 40대의 홍모씨는 지난해 7월 인터넷 메신저로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유모씨와 대화를 하다 급히 돈이 필요하다는 말에 200만원을 송금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홍씨와 대화한 자는 유씨의 아이디를 해킹한 다른 사람이었다.
권력기관 사칭에 속는 피싱 사기
지난 2004년 국내에 상륙한 소위 ‘피싱(Phishing)’은 개인정보와 낚시를 뜻하는 합성어로, 전화 등으로 개인 정보를 불법으로 알아낸 뒤 이를 이용하는 금융 사기 수법이다. 이는 이메일과 가짜 인터넷 사이트를 이용한 일반 피싱에서, 보이스 피싱, 인터넷 메신저 피싱으로 진화해 왔다. 지난 한 해 보이스 피싱에 의한 피해건수는 2만619건, 피해액은 2천36억원에 이르고, 메신저 피싱의 경우도 피해가 4천863건, 79억여원에 이른다. 피해자들이 순진해서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나 2007년 5월 지방의 한 법원장이 보이스 피싱으로 6천만원을 사기당했다는 보도를 보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피싱 사기 사건의 피해자들은 가해자가 누구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고, 송금받은 은행 계좌 정보 열람이 안돼 일반 형사범죄처럼 수사기관의 수사만으로는 그 피해를 회복하기가 어려운 현실이다. 그래서 피해자는 우선 경찰 등 수사기관에 신고를 해야 한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피해액을 돌려받기 위해서는 범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하거나, 송금받은 계좌 명의자를 상대로 부당이득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하지만 범인은 자신의 은행 계좌가 아니라 노숙자 등의 계좌, 소위 대포통장을 이용해 돈을 송금받아 피해자 입장에서 범인을 거의 알 수가 없다. 간혹 범인을 알아내도 돈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피해자로서는 돈을 송금받은 계좌 명의자를 상대로 가압류를 신청하고, 부당이득반환 청구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피싱사건은 피해액이 대부분 수십만 원에서 수백만 원의 소액이라 수임료를 주고 변호사를 선임해 구제받기가 힘들다. 그리고 법무사도 그 권한의 한계상 피싱사건을 하기가 역부족이다. 그렇다고 돈을 송금받은 계좌의 정보를 알기 위해서는 소 제기와 동시에 법원에 금융거래정보 제출명령을 별도로 신청해야 하는 등 소송기술상의 문제로 피해자 스스로 소송하기에는 더욱 어려움이 많다.
검경·국세청 등 심부름꾼 인식돼야
법률구조공단 수원지부는 피해를 막기 위한 기관 간의 공조가 필요하다는 보도자료를 냈고, 지난 1월 경기일보에서는 “끊이지 않는 피싱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관련 기관 간 적극적인 공조가 필요하다”고 보도한 적이 있다. 경찰, 검찰, 은행, IT업체, 금융감독원이 힘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또 수원지부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부터 올해 4월까지 총 64건의 법률구조를 했고, 현재도 수십 건의 피싱 피해 법률구조를 하고 있다.
피싱 사기가 근절되기 위해서는 검찰청, 국세청 등 소위 권력기관의 직원이라고 사칭하는 것에 속지 말아야 하는데, 아직도 상당수 사람들은 이 같은 권력기관이라면 지레 겁을 먹는 현실이 너무나 아쉽다. 언제쯤이면 권력기관으로 인식된 이런 기관들이 심부름꾼 기관으로 불릴지 기다려진다. 그때쯤이면 피싱 사기도 상당수 없어질 것이기에. /오명균 대한법률구조공단 수원지부장·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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