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 공중파 TV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 가운데 빵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지난 주 방영분에서는 두 사람이 기능장 자격을 놓고 경합을 벌이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 둘의 대사가 사뭇 대조적이다. 사회경제적인 지위가 더 탄탄하고 가진 것이 많은 쪽은 “그 녀석을 이겨야겠어요. 어떤 방법을 쓰든…”이라고 말하는데, 가진 것이 없어서 잃을 것도 없는 쪽은 “나는 지금 누구를 이기기 위해 여기 있는 게 아니야. 나같이 아무 것도 아닌 존재를 믿어준 식구들, 나같이 버려진 존재를 거둬준 스승님을 위해, 그 분들의 마음을 지키고 싶어서 지금 이 빵을 만드는 거다”라고 말한다. 가진 것이 많을수록 이겨야 할 이유도 많아지는 법이다. 반면 가진 것이 적으면 ‘존재’에 집중하기가 더 수월하다.
21세기 대한민국은 과거에 비해 가진 것이 많은 나라가 되었다. 물론 여전히 살기 힘든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국가 단위로 보면 경제력이 세계 10위권에 해당하는 나라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사람들은 행복하지가 않다고 한다. 배고픈 사람도 전보다 적어지고 배우지 못해 한이 맺힌 사람들도 줄고 먹을거리, 놀거리도 풍부해지고 해외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로 국제적 지위가 바뀌었는데도 보통 사람들이 느끼는 ‘소소한 일상의 행복감’은 높아지는 기미가 없다. 2010년도 한국심리학회 연차학술대회에서 발표된 한국인의 행복지수는 100점 만점에 평균 63점으로, 2007년도의 세계 가치관 조사 결과와 비교하면 97개국 중 58위라고 한다. 살림살이가 한결 나아졌는데도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무한경쟁에 묻힌 현재의 행복
우리가 일반적으로 행복지수 혹은 행복감이라고 번역하는 단어는 영어로 ‘subjective well-being’인데 풀이하자면 ‘주관적으로 자신의 존재 상태가 괜찮다고 느끼는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 수준이 낮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 상태에 대한 주관적 만족도가 떨어진다는 뜻이다. 자신의 존재 상태에 대해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존재감 확인을 위해 과도하게 애쓰기 마련이고 그런 삶은 피곤할 수밖에 없다. 자신의 존재감을 대외적으로 입증하기 위해선 체면치레와 과시가 필수이며 경쟁에서 무조건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심리학회의 이번 조사 결과를 보면 체면을 중시하고 과시욕이 있는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실제로 낮다.
나를 믿어주는 이들을 위한 삶을
그런 삶의 또 다른 특징은 미래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지나치게 희생하는 것이다. 자신의 성취를 위해, 자녀의 성공을 위해, 앞날의 더 큰 풍요를 위해 지금 힘든 것은 당연히 참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참는 것은 우리 문화에서 오랫동안 미덕으로 간주돼 왔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아직도 국가 선진화를 위해 평균 8년 정도는 더 고통 분담을 감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불확실한 미래의 풍요를 위해 오늘의 행복을 기꺼이 포기하는 사람이 많은 것을 보면 우리나라는 아직도 개발주의가 대세인 모양이다. 그러나 세계적인 트렌드를 보면 이제는 개발주의가 아니라 지속가능발전이 대세이다.
지속가능발전은 개인에게도 얼마든지 적용되는 개념이다. 무한 경쟁을 통해 무한 발전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와 현재를 조화시키고 ‘존재 상태’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는 것이 바로 개인 수준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지속가능발전이 아닐까 한다. 어떤 방법을 쓰건 이길 생각밖에 없는 사람보다 내 존재를 믿어주는 사람들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더 행복한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당연히 더 행복한 삶의 방식을 따르기가 이리도 어려운 것일까?
손영숙 道가족여성연구원 성평등교육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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