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뭐 하세요?”
친구나 직장동료들 사이에 많이 주고 받는 질문이다. 우리는 같은 시간대, 같은 공간, 비슷한 활동을 공유하는 친구나 직장동료들이 하루 일과를 마친 후에는 무엇을 하는지 궁금하다. 그러는 당신은 어떠냐구요?
약속이나 취미활동 같이 사전에 계획된 활동까지 다 마치고 귀가하면 ‘가장 원초적 모습’으로 마루 바닥에 누워 TV를 켠다. 우선 뉴스채널에서 주요뉴스 자막을 섭렵한다. 다음 순서는 정해져 있다. 선호하는 몇 개 케이블 채널을 훑어보는 것이다. 리모콘을 쥐는 이 시간이면 진수성찬 앞에 앉은 것처럼 흐뭇하다. 즐겨보는 ‘인간극장’이나 좋아하는 드라마가 동시 상영중이면 채널돌리기는 물론, 픽쳐인픽쳐 같은 첨단기능도 마구 사용한다. 그런데 문제는 ‘국산’(國産)아닌 프로그램이 꽤 재미있다는 데 있다.
그렇지만 한때 TV는 공동체 생활에 필요할 정도의 뉴스나 트렌드 정보를 얻는 수단쯤으로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이런 착각은 어느 날 우연히 깨졌다. 무심코 보기 시작한 ‘퀴어 애즈 포크’(Queer as Folks)때문이다. 미국 동성애자들이 사는 모습을 그냥 그대로 솔직하고 담백하게 보여주는 시리즈물로 제목을 굳이 번역하자면 ‘보통 사람들로서의 동성애자’ 정도일텐데, 드라마에 심취하기 시작하자 ‘우리도 보통 사람처럼 똑같이 이상해요’라고 이해되기 시작했다. 보통 사람들처럼 똑같이 자고 먹고 일하고 사랑하고 싸우고 화해하고 살아가는 드라마 속 인물들은 보통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때때로 괴상하게 굴기도 하는, 그러니까 일반인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보통 사람으로 그려진다. ‘퀴어’로 내 오만과 편견이 조금씩 깨지기 시작했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틀린 것이 아니며, 상대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는 섣부른 판단은 위험하다는 것, 그러므로 무지를 벗어나기 위해선 차이와 차별, 다름과 틀림에 대한 감수성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이때부터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TV 사랑은 미국 로펌의 변호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법정드라마 ‘보스턴 리갈’에서 정점을 이룬다. 중년의 엘런 쇼어와 노년의 데니 크레인 두 주인공 변호사의 능청맞고 코믹 발랄하며, 느끼하고도 괴팍한 환상의 연기가 압권인 이 연속극은 미국의 사회, 정치상을 풍자한 블랙코미디로 알려져 있다. 사회 곳곳에 교묘하게 내재된 인종갈등, 총기남용과 규제, 약물과 제약회사, FDA의 관계, 낙태와 광우병, 진화론과 기독교 윤리의 대결, 대선과 정치풍자 등에 이르기까지…. 몇십 분짜리 에피소드로 다루기엔 버거운 소재들을 진지하고 유쾌하며 실랄하게 풀어나간다.
미국의 사회, 정치상이나 사법제도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를 재미있게 본 이유는 ‘개념 없는’ 나에게 끊임없이 말을 걸고 ‘더 생각해볼 것’을 주문하기 때문이다. 에피소드가 끝날 쯤이면 ‘나라면 어땠을까’라며 드라마 주인공과는 또 다른 결론이나 대안을 모색해 보곤 한다. 최종회를 보고 나서는 급기야 울컥해졌다. 무패신화를 쌓아왔으나 알츠하이머에 걸려버린 일흔의 독신 변호사 데니는 어떤 방법으로도 병이 치유될 수 없다고 느끼자 베스트 프렌드이자 동료인 앨런 쇼어에게 “내 여생과 재산을 믿고 맡기고 싶은 사람은 너 뿐이며,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 않느냐”며 ‘청혼’한다. 어이없어하며 옥신각신하던 둘은 결국 캐나다 어느 섬에서 대법관을 앞세워 결혼식을 올린다. 이성애자인 이들이 결국 ‘결혼’이라는 기존의 관습과 제도를 빌어 서로를 돌봐주고 완성시켜주는 ‘파트너’가 돼 가는 과정은 슬프고도 인상적이다. 어떤 이유로든 혼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에피소드는 ‘결혼’과 ‘관계’란 과연 무엇이며, 나아가 인간으로서 존엄하게 살아가려는 개인의 자율의지를 법이 어느 정도까지 개입해야 하느냐를 진지하게 묻는다.
요즘 미국 전역을 또다시 들썩이게 하고 있는 연방결혼보호법 위헌 논란을 보면서 우리는 주변의 소수자들을 어떠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다양성을 존중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생각해보았다. 그래서인지 이제 와서 다시금 괴팍하고 엉뚱한 앨런 쇼어와 데니 크레인 커플이 그립다.
박미아 道 가족여성연구원 대외협력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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