웜홀(wormhole)

방송에서 ‘우주의 미스터리’를 가족들이랑 함께 보게 됐다. 우주 공간은 푸른 안개에 싸인 고요한 호수라기보다 격랑의 바다와도 같았다. 쪽배를 타고 꿈을 낚을 수 있는 곳이 아니라 큰 배도 난파시킬 수 있는 엄청난 위력이 있는 곳. 내가 타고 있던 작은 쪽배가 난파되기 직전, 갑자기 질문 하나가 던져졌다. ‘여기에 별이 하나 있고, 또 저쪽에 별이 하나 있다. 이 두 별 사이의 최단 거리는 얼마일까?’ ‘당연히 직선거리 아닌가? 이건 너무 쉬운데... 이 질문엔 어떤 함정이 있을거야. 그게 뭘까?’ 머뭇거리는 사이 진행자가 설명을 시작한다.

 

진행자가 종이에 점 두 개를 찍는다. 두 점 사이의 최단 거리는 물론 ‘직선거리’다. 그러더니 갑자기 종이를 구부린다. 종이가 휘어지자 두 점 사이의 간격은 직선거리보다 더 가까워진다. 두 점, 두 별 간의 거리를 더 좁힐 수 있는 방법은 공간이 휘어지는 것이었다. 이 휘어진 공간을 가로지르면 우주여행을 할 때 한 쪽에서 다른 쪽으로 훨씬 빨리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두 개의 시공간이나 동일 시공간의 두 곳을 잇는 좁은 통로, 블랙홀과 화이트홀을 연결하는 길, 이 통로를 ‘웜홀’이라 한다. 웜홀은 웜(worm) 벌레, 홀 (hole) 구멍, 즉 벌레가 파먹은 구멍이란 뜻이다. 벌레가 과일 표면의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이동하려고 할 때 빨리 가려면 과일 껍질 위 두 점 사이의 직선거리로 가면 되겠지만, 구멍을 뚫고 가면 훨씬 더 빨리 이동할 수 있다는데 착안해 붙여진 이름이다.

 

별들 간 거리의 최단 거리는 팽팽하고 매끈한 통로인 직선거리지만 별이 놓여져 있는 면을 휘어버린다면 그 간격은 좁아진다. 울퉁불퉁한 굴곡이 때론 별 사이의 거리를 좁혀주기도 하는 것이다.

 

출근해 업무를 보다가 문득, 지난 밤에 보았던 웜홀이 갑자기 머리를 스쳤다. 여러 사람들이 함께 일을 하면서, 서로를 향해 평탄할 길로 거침없이 신나게 달릴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될까? 주위를 빙 둘러보았다. 동료들이 시원스레 뚫려있지 않은 길, 울퉁불퉁 휘어진 길 너머 저쪽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 휘어진 길들이 사람들 간의 간격을 단축시켜주는 주름일까? 우리가 살면서 휘어진 길을 피할 수 없다면 휘어짐을 통해 단축된 간격, 그 사이를 연결시켜주는 통로인 웜홀을 볼 수 있는 지혜가 때론 필요할 것 같다.  김병학 건강관리협회 경기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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