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정 임 문화부장
날씨가 추워지면 마음부터 바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각종 봉사단체 회원들이다. 불우이웃들이 겨울을 나는 데 필요한 것들을 지원해 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중 가장 큰일이 김장이다. 반드시 불우이웃이 아니더라도 독거 노인이나 장애인, 소년소녀 가장 등에게 이들이 전달해 주는 김장김치는 큰 선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들 봉사단체들에 비상이 걸렸다. 배추 값이 하루가 멀다하고 뛰어 오르더니 급기야 포기당 1만원을 넘어섰다. 소비자 가격은 1만5천원까지 치솟았다고 하니 김치가 아닌 금(金)치란 말이 실감이 난다. 일반 가정에서조차 김치 대신 나물이며 튀김 종류로 밥상이 바뀌고 있는 형편에 김장김치를 담궈줄 수 있을지 걱정이 태산이다.
매년 이맘 때면 배추 값이 오르긴 했었다. 추석 명절을 전후해 소비가 느는 데다 김장 배추가 본격적으로 출하되기 전에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이었다. 그러나 올핸 상황이 다르다. 봄에도 배추 값은 포기당 5천원으로 지난해에 비해 2배 가까이 높았다. 3월까지 이어진 폭설에 비까지 잦아 산지 가격을 부추겼던 것이다. 신선한 밥상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예년에 비해 역시 두세배 오른 시금치와 냉이 등 봄나물 가격에 놀라 장바구니에 담을까 말까 고민만 하다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배추는 날씨에 민감하다. 올해는 특히 비가 많이 와 뿌리가 활착을 못하게 돼 평균 600㎡당 5톤 한 대 정도 수확하던 것이 1천500㎡에서도 한 대 분량을 채우기 어려웠다. 추석 연휴를 이용해 대관령을 여행한 한 선배는 기대했던 배추밭의 장관을 보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고랭지 배추 주산지인 대관령 안반덕은 200만㎡에 달하는 광활한 배추밭인데 이미 붉은 흙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한여름에도 선선한 대관령 고지대에 30도가 넘는 폭염과 집중호우가 이어지면서 배추들이 속썩음병이 생겨 조기수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생육이 부진하니 작황은 예년의 절반 수준으로 물량이 달린 것이 당연하다.
반면 준고랭지 배추밭은 거꾸로 출하가 늦어지고 있다. 예년이면 지금쯤 출하돼야 하지만 날씨 탓으로 배추 생장이 늦어지면서 이달 중순 경에나 출하가 가능할 걸로 예상됐다. 그나마 해남지방의 월동 배추가 출하될 거란 기대를 했지만 추석을 전후한 기습 폭우로 출하 시기를 맞추기 어려워 배추 가격은 좀처럼 내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무, 대파 값도 만만치 않다. 고추 역시 작황이 좋지 않은 데다 잦은 비로 건조가 어려워 태양초고추라는 말은 아예 사라질 위기다. 벌써부터 4인 기준 김장김치 비용이 예년에 비해 4배 정도 더 들거란 전망도 나오고 있다.
이렇다 보니 김치조합에 가입된 90여개 중소김치제조업체들이 일시 가동을 중단하거나 아예 문을 닫는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린다. 돈을 줘도 배추를 못 사고 김치를 팔면 팔수록 손해라는 것이다. 학교에 김치를 납품하는 업체는 연초에 계약한 단가 이상 줄 수 없다는 학교 측 답변에 계약을 해지해야 할 처지다. 우리 자녀들이 먹는 급식에서마저 배추김치가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결식노인 무료급식소 등도 급식일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고 한다. 점심 한 끼 따뜻한 밥상을 기대했던 노인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다. 이래저래 어려운 사람들만 죽을 맛이다.
아무리 날씨 탓이라고 해도 이렇게 가다간 올 겨울 밥상에서는 아예 김장 김치를 찾아 볼 수 없게 될 지도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건 정부가 오늘 김장 배추 수급대책을 내놓는다고 한다. 절임 배추를 수입하고 월동배추를 앞당겨 출하하는 등의 대책이 들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중간 유통상인의 매점매석 행위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기로 했다. 겉핥기식이 아닌 실효성 있는 대책들이 나와야 한다.
/박 정 임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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