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승도
그때 어디로 가고 있었는지 지금은 모른다
눈이 길을 막아 머문 곳, 오두막에는 눈보다 따듯한 노인네가 있었다 날마다 온돌이 절절 끓어 방문을 열면 장작을 한 아름 안고 부엌으로 들어가던 노인의 모습
밤이면 더욱 맑게 깔리던 고요, 백설은 스스로 빛을 뿜어 어둠을 녹였다
그때 무엇을 하러 가던 길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소리는 없었고 빛과 온기만이 흐르던 곳, 눈이 산과 산을 덮고 오두막을 덮어 산도 오두막도, 노인과 나도 눈이었다
그때 어떻게 그곳을 떠나왔는지 지금은 모른다 왜 그곳을 떠나야 했는지
그때 그는 세상일에 지치고 사람에 지쳐 문명의 반대쪽으로 무작정 걸었으리라. 바람이 불어오는 곳, 눈보라를 뚫고 가다가 큰 눈이 막아선 곳, 거기 세상일과는 무관하게 사는 첩첩산중의 노인네 한 분을 만났으리라. 그는 그 노인과 세상 일이 아닌 먼 곳의 얘기로 밤을 지새웠으리라. 그런 밤이면 마치 선계에 내린 눈처럼 백설이 뿜어내는 흰빛들이 깊은 산중에 만건곤하여 골짜기 골짜기를 오래 포근히 안아주었으리라. 그리하여 마음의 향방을 몰라 지상에 내려앉지 못하고 떠도는 눈송이처럼 바람에 떠밀리고 떠밀리던 그는 결국 다시 그 심심산골 품으로 들어가 영 나오지 않는다는데. <이덕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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