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경찰에게 목숨을 걸고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라고 명령할 수 있을까 심히 의심스럽다. 정당하게 법집행을 하는 경찰이 범법자들로부터 맞기만 할 뿐 공권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비난을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중국인에게 당했다. 한 술 더 떠 폭력을 휘두른 중국인을 의법조치는 고사하고 정중히(?) 모셨다. 우리 국무총리가 엄단을 공언했는데도, 결과는 일반 국민들이 이해할 수 없게 됐다. 누가, 왜, 어떻게 결정했는지 건전한 상식으로는 종잡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다음번에도 전례에 따르면 어쩌나하는 씁쓸한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1983년 중공민항기 불시착 이후 한중간 외교에서 우리 정부는 의외의 방법으로 현안을 처리한 경우가 많았다. 불시착이 수교로 이어졌다는 평도 있다. 그러나 6·25에 대한 공식언급이 아직도 없으며, 자유중국(타이완)의 간곡한 부탁에도 외면하고 명동 대사관을 중국에 넘겼다. 국가원수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통역이 대한민국을 남조선이라 불렀고, 수교 후 2~3년동안 중국 국가기관의 안내문에 역시 남조선이라 실려 있었어도 항의했다는 기록은 찾기 어렵다.
한 중국 언론인은 한·중수교와 관련, 호혜평등원칙에 따라 “한국이 중국에게 북한과 단교 후 수교를 요구했던지, 한국이 타이완과 국교를 유지한 채 수교하자고 했으면 중국이 가장 난처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당시 중국이 중시 여기는 명분을 앞세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중국은 6·25전쟁 때 북한에 파병을 했지만 김일성을 앞장서 도울 처지가 아니었다고 했다. 반면 타이완은 한국의 건국과 국제적 승인, 그리고 6·25전쟁 때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었다는 것이다.
원과 청나라가 소수민족으로 한족의 중국을 통치할 수 있었던 것은 법원칙과 명분에 충실했기 때문에 가능했었다는 역사의 교훈도 있다. 중국이 우리보다 국력이 크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원칙 외교다.
이번 일이 한중간 어떤 현안을 해결할 단초가 될 수 있다 하더라도 국가 공권력이 매맞아가면서까지 번 국익은 국가 정체성 유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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