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해 수고하셨습니다”

박정임 문화부장 bakha@ekgib.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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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얗게 쌓여 있는 눈을 보니 마음까지도 하옛던 때가 생각납니다. 어릴 적엔 참 눈이 많이도 왔던 것 같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서는 소복히 쌓인 눈더미에 놀라 후다닥 마당으로 뛰어나갔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으니까요. 그 땐 길이 막혀 학교갈 걱정 따윈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와 생각하니 눈이 많이 왔다기 보다는 제가 너무 작아 뭐든지 크고 많아 보였던 것 같습니다.

 

학교갈 차비라며 손에 쥐어주시는 10원짜리 동전 두개는 아주 큰 돈이었습니다. 5남매에게 귤 세알씩을 나눠주시며 ‘한 겨울 귀한 거’라고 하시면 정말인 줄 알았습니다. 살아있는 바다고기는 볼 수도 없던 시절, 소금에 절인 고등어 반쪽이면 밥 한공기가 모자랐습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해 생물도감에 실려 있는 수 많은 바다 물고기를 보면서 ‘고등어 말고도 이렇게 많은 생선들이 있었구나’ 하며 무척이나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도시락에 얹혀있는 계란을 자랑하려 옆 친구를 흘깃 봤는데 거기엔 분홍색 빛 나는 둥그런 소시지를 계란에 씌어 부쳐낸 반찬이 그득했습니다. 그 때 세상이 다 똑같지 않다는 걸 알았습니다. 세상엔 간고등어 따윈 생선으로 치지도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알게됐죠. 하얀 마음에 욕심이라는 물이 들기 시작했던 게 아마도 그 때였던 것 같습니다. 농사꾼인 아버지는 잊을만 하면 한번씩 “출세해야 한다. 그럴려면 공부해야 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물려줄 게 없으니 알아서 하라는 뜻이라는 걸 이해했을 땐 이미 저도 똑같은 말을 하는 학부모가 돼 있었습니다. 후회하며 사는 삶을 살아선 안되는데, 그런 생각에 최선을 다해 보지만 세상이 어디 제맘 같겠습니까. 매년 이맘 때가 되면 아쉬운마음에 새해를 기약하지만 또 이맘 때가 되면 후회로 가득합니다. 어디 저만의 생각이겠습니까.

 

경인년, 백호랑이의 해가 쏜살같이 지나갔습니다. 올핸 폭설대란으로 시작돼 구제역과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지금까지 사건·사고가 끊이질 않았습니다. 특히 9월 한가위를 앞두고 찾아온 태풍 곤파스 등의 영향으로 도로와 제반시설이 붕괴되고 인명 및 재난사고를 낳았습니다. 이상기후는 농작물에도 영향을 미쳐 배추대란이 벌어지는 등 그 어느 해보다 농민의 한숨소리가 깊었습니다.

 

지난 3월에는 서해 백령도 앞 바다에서 천안함이 침몰됐습니다. 11월에는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태까지 발생해 남북 관계는 더욱 악화됐고 시민들의 불안감은 최고조에 달했습니다.

 

그럼에도 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대표팀의 첫 원정 16강 진출과 2010국제축구연맹 U-17 여자월드컵에서의 사상 첫 우승, 경기도선수단의 제91회 전국체육대회 출전사상 첫 종합우승 9연패 달성 등 기분좋은 승전보가 국민을 위로했습니다.

 

돌아보니 뚜벅뚜벅 먼 길을 걸어온 것 같은 느낌입니다. 때론 마음같지 않아 속상해 하기도 했고 때론 남의 시샘을 살까 속으로만 웃을 때도 있었습니다.

 

올 한 해를 정리하면서 지난 친 욕심은 버려야 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가톨릭에서도 과식은 ‘7대 죄악’ 중의 하나에 포함된다고 합니다. 여기에서 과식이라 함은 식생활의 과식뿐 아니라 마음의 과욕까지를 포함합니다.

 

새핸 서로 사랑하는 한 해가 됐으면 합니다. 아직도 누군가에게 못한 사랑과 감사의 말이 있다면 오늘 용기를 내 보세요. 그리고 내년엔 꼭 돈이 아니더라도 행복하고 따뜻한 큰 부자가 되는 한해이기를 빌어 봅니다. “여러분 올 한해 정말 수고 하셨습니다.”   박정임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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