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월의 꽃샘추위라 하지만 봄이 오고 있는 건 분명한가 보다. 한 낮 봄볕의 따사로움에 언 땅이 녹아 질척거린다. 골짜기를 덮고 있던 두터운 얼음덩이들은 어느 사이엔가 사라지고 시냇물은 다시 흐른다. 며칠 전 빈 병에 꽂아둔 갯버들이 벌써 기지개를 켠다.
겨울과 봄의 차이가 느껴진다. ‘차이(差異)’, 서로 같지 않고 다르다는 뜻이다. 일상에서 흔히 쓰는 단어지만 ‘차이’라는 말은 세상사를 함축하고 있기도 하다. 빈부의 차이, 국력과 학력의 차이, 경험이나 실력의 차이, 1등과 2등의 차이, 차이란 말이 신분을 규정하고 자존심도 변하게 한다. 차이를 이해하면 조화를 이룰 수 있지만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는 갈등을 겪기도 한다.
행복은 차이를 이해하는 데 있어
취미와 노동의 차이,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찾아가며 하는 일은 취미활동이라 하고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은 노동이라 한다. 간식과 군것질의 차이, 일하다 먹는 것은 간식이고 놀다가 먹는 것은 군것질이다. 버릴 것을 걱정하면 쓰레기가 되고 쓸모를 고민하면 쓸 애기 즉, 재료가 된다. 크는 대로 내버려 두면 잡초, 화분에 담아 가꾸면 화초가 된다. 내 일이라 생각하면 주인, 남의 일이라 생각하면 머슴이 된다. 혼자 입어서 어울리는 건 외출복이고 함께 입어서 어울리면 유니폼이라 한다. 손길이 닿는 일에는 의미가 생기고 그냥 놔두면 무의미해 진다. 일상에서 차이를 찾아가며 말장난을 하다 보니 봄맞이 상상에 행복감이 느껴진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내려와 낮은 곳에 머물며 만물을 이롭게 한다고 했다. 봄비가 산야를 적셔주면 새 싹들이 돋아날 것이다. 하늘에만 머물러 있는 물방울은 구름일 뿐이다. 땅으로 내려오는 순간, 수도 없이 많은 다른 친구를 만난다. 풀씨를 만나 싹을 키우고 도랑을 만나 농사를 짓게 하고 전기도 만들어 준다.
각기 다른 것끼리 잘 어울리는 것을 조화라 한다. 차이를 인정하면 융화되기 쉽다. 차이란 말이 다시 정겹게 다가온다. 남자와 여자의 차이는 분명하지만 결혼을 통해 새 생명을 낳듯이, 차이가 클수록 창조의 가능성도 큰가 보다.
해마다 찾아오는 봄이지만 왜 봄을 기다리나? 겨울이 춥기 때문일 것이다. 옷을 하나씩 껴입다가 다시 하나 씩 벗어던지는 기분, 무더위에 진저리가 나더라도 추운 겨울에 우리는 여름을 상상한다. 어려울 땐, ‘차라리 세상이 뒤바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더 나아질 거란 확신도 없지만 그래도 뭔가 바뀌길 기대하는 마음, 새로움에 대한 기대 때문일 것이다. 새로움에 대한 기대는 희망이다.
차이의 순환이 삶이다
올 봄에는 희망의 꽃들이 방방곡곡에서 만발했으면 좋겠다. 절망보다는 희망이 좋지 않은가. 그런데 희망은 어디서 오나? 상상에서 온다.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것을 현실에서 그려보는 것을 상상이라 한다. 상상력은 그걸 찾아내는 힘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상들, 기왕이면 성공을 상상하자.
분석을 좋아하는 이들은 언제나 불길한 상상을 앞세운다. 걱정거리나 문제점 찾아내는 데 더 익숙해 있다. 교사가 시험문제를 낼 때 답을 갖고 있듯이, 문제점을 지적할 때는 답안지도 준비해 둬야 한다. 대안이다. 세상이 이렇게만 돌아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사람이나 그걸 감시하는 사람이나 게임을 하듯이 문제와 답안지를 나누다 보면 이상향도 만들어질 것 같다. 끝말잇기 놀이는 아이들의 창의력 향상에 많은 도움이 된다지만, 어른이 되면서 말꼬리 잡기로 변질되기도 한다. 아이와 어른의 차이가 때로는 상상의 틀을 뒤바꾸기도 하는 모양이다.
올 봄에는 여느 해보다 어려운 일이 더 많이 다가올 것 같다. 구제역 여파가 아직도 행정을 정체시키고 있고, 축산농가의 슬픔에 고기를 사먹는 이들의 시름까지 더해지고 있다. 절망으로 지쳐 있는 이에게 봄이 온 들 무슨 소용일까? 이럴수록 희망상상이 절실해진다.
다시 일어나는 상상, 다시 성공하는 상상, 웃음이 꽃피는 상상.
강우현 한국도자재단 이사장·남이섬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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