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을 위해 울었다

참으로 가깝고도 먼나라 일본. 그 일본을 위해 한국인이 울고 있다.

 

무엇을 하든지 그저 괘씸하게만 느껴졌던 그들에게 흘리는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일본대사관 앞에서 치욕의 역사를 일깨워주던 위안부 할머니들도 위기에 봉착한 일본인들에게 ‘힘을 내라’며 눈물로 호소했다. 네티즌들도 일본인들에게 위로의 글을 올리고 있다. 악플로 일본과 일본인들을 평가하던 이들이 그들의 참상에 아픔을 함께 하자고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대 지진과 쓰나미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순히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뉴스를 보았다. 얼만큼 피해가 발생했을까 혹시 쓰나미가 한국에는 피해를 주지는 않을 것인가 등이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 처참한 모습이 드러나면서 마음이 바뀌고 있다. 현장의 절규와 일본인들의 고통이 뉴스를 통해 마음으로 전이되기 시작하면서 TV 앞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고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눈물을 흘렸다. ‘쓰나미가 오는 순간 딸과 부인의 손을 잡고 놓치 말아야 하는데 자신도 모르게 손을 놓고 말았다’는 평범한 일본 가장의 고통이 온 국민의 심금을 울렸다. 쓰나미가 들어오는 순간 절박하게 ‘도망쳐’라는 외침도 이제는 아픔으로 다가왔다. 잃어버린 가족을 찾아 폐허가 된 집안의 사진을 찾아 만지고 또 만지는 절제된 슬픔을 보면서 차라리 소리내어 같이 울었으면 하는 마음까지 든다.

 

눈물과 함께 감동도 있다. 전세계가 우려하고 있는 원전폭발 현장으로 뛰어가는 일본인들이다. 정년퇴임을 앞둔 59세의 남성이 원자로의 냉각작업에서의 방사능 유출을 막기 위해 자원했다. 편안한 노후와 사랑하는 부인과 딸을 두고 떠나는 그에게 가족들은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힘내세요”라고 배웅했다고 한다. 목숨을 담보로 나라를 위해 달려가는 모습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감탄도 있다. 방사능에 오염된 바닷물이 들어오는 원전에서 줄지어 탈출하는 모습이나 몇 시간씩 줄지어 한 통의 물을 사는 등 처절하게 느껴질 만큼 질서정연한 그들에 국제사회가 감탄하고 있다. 물론 세계에서 유일하게 원자폭탄을 겪은 일본인들의 공포가 일부 사재기 등으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일본인들의 위기대응은 우리들에게는 분명 부러움이다.

 

일본 대지진과 피폭사태를 바라보는 사람들마다 느낌과 반응은 다르다. 하지만 다소 생소할 수도 있지만 일본인들을 위해 우리가 손을 내밀어야 할 시기인 것은 분명하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에티오피아라는 이름만 나오면 나는 가슴이 뭉클해진다. 현지 취재를 통해 한국전쟁 참전용사와 그의 가족들을 만나고 온 뒤 항상 그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가난한 아프리카에서 공병도 의료병도 아닌 전투병을 파병한 나라. 전쟁 이후 사회주의 혁명으로 참전용사들이 역적으로 몰려 고통받았던 인간적인 아픔이 그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티오피아는 먼나라가 아니라 가족같은 나라다.

 

쓰나미 이후 한류스타의 성금이 줄을 잇고 경기도는 외국의 재난지원을 위해 처음으로 추경예산을 편성해 13억원을 지원키로 했다. 수원시를 비롯 기초단체들도 자매도시에 위로전문을 보내고 모금운동에 나섰다. 사실 일본 돕기 성금 자체가 침략자 일본, 경제대국 일본이라는 인식이 있는 우리에게는 생소하다. 하지만 위기 때 내미는 작은 손이 상상이상의 희망을 만들어 준다. 실제 도움을 받지 않아도 누군가 나를 도와주려 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희망은 꿈틀거린다.

 

도움을 준다는 것은 무엇을 바라고 하는 행동은 아니다. 하지만 그 손이 아픈 과거를 가진 한·일관계를 새롭게 만들어주는 기폭제가 될 것은 분명하다. 또 내가 겪을지 모를 재난에 이웃이 있다는 희망이기도 하다.  최종식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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