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들을 감동시킨 독자의 금일봉

한 독자가 금일봉을 편집실로 보내왔습니다. 책 만드느라 얼마나 수고하느냐면서, 회식이라도 한번 하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어제 편집자들과 함께 점심을 했습니다. 책 만드는 사람들에겐 이건 하나의 감동입니다. 이런 독자들이 존재하기에, 오늘도 한 권의 책을 만들기 위해 온몸으로 일하는 출판 편집자들은 힘을 얻습니다.

 

출판 편집자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한 시대와 한 국가사회의 정신과 사상을 조직하고 체계화시키는 작업이란 한 권의 책으로 가능합니다. 한 시대 한 국가사회, 한 민족공동체가 반듯하게 발전하기 위해서 반듯한 정신과 사상을 담아내는 책의 문화가 필요·충분조건이고, 이 책을 만드는 권능과 의무가 출판 편집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한 권의 책’으로 한 시대는 건강할 수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이 한 인간의 행로를 바꿔놓을 수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이 한 국가사회와 민족공동체를 새로운 역사 차원으로 진동시킬 수 있습니다. 위대한 인류문명은 책의 정신, 책의 힘으로 창출됐습니다.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책의 힘

 

반듯한 책을 꿈꾸고 그것을 위해 헌신하는 출판 편집자라면 그가 사는 시대 상황을 고뇌할 것입니다. 흔들리는 시대현실에서 출판 편집자들은 오늘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현 상황을 대승적으로 극복해내는 보다 대안적이고 보다 근원적인 인식과 해답을 제공하는 한 권의 책을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의 흔들리는 시대현실을 살면서 우리는 반듯한 문제의식과 인문정신으로 성찰하는 출판 편집자들의 존재가 참으로 소중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한 국가사회 또는 한 민족공동체의 정신적·물질적 삶의 수준과 역량은 그 국가사회와 그 민족공동체가 창출해내는 출판문화로 평가할 수 있다는 단호한 주장을 할 수 있습니다. 그 공동체가 창출하고 보유하는 책의 문화, 독서의 문화로 그 공동체의 행복지수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 지식정보시대에.

 

유감스럽게도, 제대로 책을 만들겠다는 출판 편집자가 귀해지는 듯해서 안타깝습니다. 본격적인 독서를 하는 독자들이 줄어들고 있는 듯해서 때로는 위기감마저 들고 있습니다. 한쪽에서 지식정보시대라고 소리 높이 외치면서도 사실은 그것을 뒷받침하는 어떠한 국가사회 정책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학술적이고 인문적이며 수준 높은 교양을 담아내는 책은 대중적이지 못하지만, 반드시 존재해야 합니다. 최신의 정보와 지식과 이론을 담아내는 책은, 국가사회의 문화적 인프라로서 기획하고 출간해야 합니다. 국가사회 발전 전략의 일환으로 고급 지식과 정보와 이론을 담아내는 책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오늘 다양한 분야에서 공공적 프로그램의 지원을 받는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들 연구결과는 책으로 출간되어 독자들에게 제공됨으로써 소기의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책은 ‘사상과 이론의 공개시장’입니다. 모든 연구와 성찰은 사상과 이론의 공개시장에 상정됨으로써 제2·제3의 창조가 가능해집니다. 이 사상과 이론의 공개시장에서 참으로 창조적인 역할을 하는 존재가 출판 편집자들입니다.

 

상업성 얽매이지 않은 출판 환경을

 

반듯한 출판 편집자들이 한껏 일할 수 있는 조건을 보다 국가사회적인 프로그램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전혀 상업적이지 않은 책도 과감하게 기획해내는 출판 편집자의 문제의식과 실행이 가능하도록 하는 지원프로그램을 국가는 당연히 해내야 합니다. 가장 상업적이지 않은 책이 때로는 국가사회 발전의 차원에서 참으로 경이로운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한 권의 책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출판 편집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의식과 실천으로 우리의 개인적·공공적 삶은 건강하고 반듯한 행로를 걸을 수 있습니다.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보다 창조적인 발상을 온몸으로 해낼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한 권의 책이 세상을 보다 창조적이고 보다 아름답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김언호 도서출판 한길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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