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갔다 왔다고 하면 예전에는 조상의 산소에 성묘를 다녀왔다는 이야기였다. 허나 요즈음은 대부분 등산을 하였다는 말로 이해들을 한다. 올봄에도 어김 없이 청명한식을 맞아 많은 후손이 성묘를 다녀갈 것이다. 사는 것이 바빠 비록 그럴 틈이 없을지라도 다시금 조상을 생각나게 하는 시기다.
산을 찾는 다른 의미인 등산에 대해 잠시 생각을 해본다. 등산은 왜 하는가. 산에 왜 가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 조지 멀로리는 ‘산이 거기에 있으니까’라고 선문답 같은 답을 남겼다. 대부분 웰빙의 한 방법으로 산을 찾는 것 같다.
산업화가 되어가는 사회일수록 등산인구가 늘어난다. 그전까지는 동서고금을 통해서 종교적인 목적이나 군사적인 목적으로 산에 올랐다. 기록을 보니 현재와 같은 의미가 있는 최초의 등산은 1786년 8월8일 의사였던 미셸 파카르와 농부였던 자크 발마에 의한 알프스 최고봉 해발 4천810m의 몽블랑 등정이었다. 이를 계기로 등산을 영어로 알피니즘(albinism)이라 표현을 하게 되었다. 우연히 산을 찾기 시작하였지만, 사실 가슴 속에 응어리진 울화를 삭이고자 하는 바람이었다. 화(火)가 화(和)로 정화되기를 기대도 해보았다.
산을 오르면 겸손을 배우는 것 같다. 도종환 시인도 ‘올라온 곳에서는 반드시 내려와야 함을 겸손하게 받아들여, 산 내려와서도 산을 하찮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라고 했다. 산은 항상 그 자리에 있으면서 오는 사람 차별하지 않고 언제라도 고즈넉이 감싸 안아 준다.
주말에 특히 많이 발생하는 중노년층의 등산사고 소식을 접하면서 생각은 20대인데 몸은 40대라는 격언이 떠오른다. 산을 정복의 대상으로 삼지 말고 더불어 함께 한다는 마음으로 산행을 음미해 보자.
등산 격언에 산은 심장으로 오르고 무릎으로 내려온다는 말이 있다. 오를 때는 심장을 조심하고 내려올 때는 무릎관절을 조심하라는 말이다. 한동안 찾지 못했던 지리산을 직장 후배들과 함께 다시 찾으려 한다. 우리 민족의 온갖 애환이 서려 있는 어머니 품 같은 산이다. 그 품속이 시리도록 그립다.
박상선 도새마을회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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