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꽃싸움에서는 이길 자 없다 했으니
그런 눈부신 꽃을 만나면 멀리 피해 가라 했다
언덕 너머 복숭아밭께를 지날 때였다
갑자기 울긋불긋 복면을 한
나무들이 나타나
앞을 가로막았다
바람이 한 번 불자
나뭇가지에서 후두둑 후두둑,
꽃의 무사들이 뛰어내려 나를 에워쌌다
나는 저 곡우(穀雨)의 강을 바삐 건너야 한다고
사정했으나 그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럴 땐 술과 고기와 노래를 바쳐야 하는데
나는 가까스로 시 한 편 내어놓고 물러날 수 있었다
詩가 있는 아침
꽃 피는 봄날, 모두들 꽃놀이 가서 음주가무로 즐거운 날, 복사꽃 아래 깊은 사색의 포로가 되어 꼼짝 못하고 앉아 있는 시인의 꼴이라니! 어서어서 신록으로 가는 ‘저 곡우의 강’을 건너야 이 어지러운 심사를 정리하고 평상심을 찾겠는데, 그러나 시인을 압박하는 봄(꽃)의 폭력의 수위는 절정에 이르고 끝내 그 복면 무사 같은 봄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겨우 봄의 시 한 편을 써 내놓고 간신히 봄을 빠져나왔다는 시인이여! 가까스로 시 한 편을 쓰고 봄으로부터 빠져나왔다고 엄살을 부렸지만 흥청망청 술과 고기로 봄의 제단을 차리지 않고도 봄과 깔끔하게 맞장 뜨고 빠져나온 시인은 중원의 고수검객 아니랴. 이덕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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