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찌의 변명

부모님께는 가장 보여 드리기 싫은 것과, 담임교사와 둘 만의 비밀이 성적표다. 학창 시절, 성적표를 등 뒤로 몰래 감추던 기억은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학교생활에서 성적표를 받는 순간이 가장 긴장되고 점수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하지만 노력에 비해 언제나 기대에 어긋나는 게 점수다.

 

나도 그랬다. 충청북도 단양의 산골 초등학교를 다녔지만 가장 성적이 좋았던 기억은 2학년 때, 3등이었던가? 중학교 시절엔 17등을 넘어 본 적이 없다. 겨우 서울에 있는 상업학교에 진학했다. 졸업성적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전교생 162명 가운데 157등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3년 동안 누적된 성적이 잘못 기록된 이유는 찾지 못했다. 그나마 내 뒤의 다섯 명은 학교에도 제대로 나오지 않는 녀석들이었다. 꼴찌, 하하하! 차라리 웃고 말았다.

 

과거에 꼴찌를 했다는 걸 자랑 삼아 신문에 쓰는 세상이 되었으니 세상이 많이도 변했다. 요즘엔 오히려 꼴찌를 했기 때문에 창의적이라는 칭찬까지 듣는다. 역설적으로 말하는 이들은 배우고 외운 것이 없으니 상상력이 풍부해진 거라고 추켜준다. 공교육에서 배운 것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자식이 꼴찌를 하는데도 부모님은 왜 그리도 무관심했을까?

 

성적표에 무관심한 부모님

 

어버이날을 보내면서 학업 성적에 대해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신 부모님께 다시 한 번 깊은 고마움을 느낀다. “네 인생은 너의 것, 네가 하고 싶은 걸 잘 해야지” 가장 큰 힘이 된 격려였다. 은행에 취직하겠다고 상업학교에 입학한 고등학교 1학년 때, 하지만 나는 미술대학에 진학하고 싶었다. 그림만 그렸다. 대회에 나가 많은 상도 탔다. 그럴수록 학교 성적은 떨어졌다. 결국 미술대학에 진학했지만 지금은 학교에서 배운 과목이 하나도 기억에 남아있지 않다.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생활에서도 성적표는 매우 중요하다. 승진과 표창과 징계의 근거가 된다. 성적을 내는 평가자는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하는 저승사자 같은 존재지만 평가를 받는 이들에게는 불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객관성과 공정성, 그리고 성적 분포 균형까지 맞추다 보면 결과가 우스꽝스러워진다.

 

기업평가도 마찬가지다. 남이섬 대표이사를 처음 맡았던 2001년, 경영이 매우 어려워 은행 융자를 받으려 했으나 번번이 거절당했다. 재무제표와 경영평가 점수가 기준에 미달한다는 이유였다. CEO 브랜드와 미래 가치를 중시한다지만 아무도 새로운 사업계획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중장기적 회생 설계에도 관심이 없었다. 평가자는 과거의 좋지 않은 실적이 앞으로도 나쁘게 작용할 것이라는 선입견을 중시했다. 이유는 평가자를 감시하는 자체감사 때문이었다. 경영이 좋아진 후 서로 융자를 하겠다고 나섰지만, 지금은 당시의 평가자와 금융기관 자체가 사라지고 만 경우도 있다.

 

시험문제에 객관식이 많은 이유는 평가를 공정하게 하기 위함이다. 사지선다형 문제에서는 개인의 창의적 소질을 발견하기가 어렵다. 불가능하다. 채점에 용이하고 뒷말이 없다는 것이 객관식 문제의 장점이기는 하다. 그러나 연필을 굴리면서 얻어낸 답변과 점수가 실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최근 유행하는 다면평가가 공정성과 객관성은 어느 정도 만족시키는지 모르지만 조직 내의 창의성 발굴에는 오히려 장애가 된다. 창의력이 있거나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도전을 감행하려는 용기 있는 사람이 공조직을 떠나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창의성 해치는 객관성과 공정성

 

누가 뭐래도 지금은 경쟁사회다. 경쟁 없는 초등교육을 받은 사람도 사회생활을 하려면 경쟁은 피할 수 없다. 점수나 성적표는 경쟁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적의 평가자는 매우 신중해야 한다. 학생들의 창의성을 격려하기 위해 일부러 점수나 등수를 내지 않는 학교가 있듯이, 창의적 조직에서는 장기적 안목에서 단기 평가를 유보해 주기도 한다. 만만디 느리다는 중국도 4년 전부터 ‘국제창의성박람회’를 열면서 장기 경쟁을 유도하고 있다. 한국이나 경기도나, 세계와의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객관식 위주의 평가 제도를 창의적 주관식으로 전환할 때를 검토해야 할 것 같다.   강우현  한국도자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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