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가을 월드비전 경기지부 직원, 경기도교육청 관계자 등과 함께 아프리카 대륙 동부의 아름다운 나라 케냐공화국에 다녀 온 적이 있다.
케냐 수도인 나이로비는 우리나라 중소형도시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시골로 들어갈수록 100년 전 우리나라의 모습이 연상될 정도의 오지가 펼쳐졌다.
오지인 와지르 마을에 도착해 경기지역 학생들이 모금한 돈으로 학교를 신축하고 우물을 만들어준 현장을 둘러본 뒤 다시 나이로비로 들어올 때다.
공항에서 허름한 봉고차를 타고 나이로비 중심가로 들어서는 순간, 젊은 케냐 운전자 옆에 있던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름다운 멜로디가 아닌 단순한 벨소리가 차안에 시끄럽게 울려퍼졌지만 운전자는 도통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의아한 생각에 목적지에 도착해 그에게 휴대전화를 받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물었다. 그의 답변은 간단 명료했다.
“운전 중 휴대전화를 받으면 운전에 집중할 수 없고 그만큼 교통사고 발생 위험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한손에 휴대전화를 들고 한손으로 운전대를 잡는 것이 낯설지 않은 내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운전 중 전화받지 않은 것을 이상히 여긴 자체가 오히려 이상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 케냐의 GDP는 1천25달러 밖에 되지 않는다. 오염된 식수와 낙후된 의료환경 등으로 인해 평균 수명이 50세도 되지 않는다.
이처럼 후진국에 머물고 있는 케냐지만 젊은 운전자의 시민의식은 어느 선진국민 못지 않았다.
일본 시코쿠의 가가와현은 인구가 100만여명으로 수원시와 비슷한 규모다. 이 지역은 가가와현의 옛 지명인 사누키에서 이름을 딴 사누키 우동으로 유명하다. 100만 인구 도시에 크고 작은 우동집이 무려 800여개에 이르고 우동 만들기 체험학교도 여러 곳이 있다.
우동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는 도시다. 이 때문에 가가와현에는 우동을 맛보기 위해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과 일본인 들로 넘쳐난다.
가가와현에서도 가장 유명하다는 우동집을 방문한 적이 있다. 점심시간을 맞춰 갔지만 워낙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다음 일정 때문에 당초 목표했던 우동집을 뒤로 하고 다른 곳으로 방향을 돌리는 순간, 차량이 한 대도 없는 것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상하다는 생각도 잠시, 200여m 떨어진 주차장에 차량 수백여 대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 것을 발견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는 주차 습관과 전혀 다른 모습에 다시 한번 놀랄수 밖에 없었다. ‘나 하나만은 괜찮겠지’라는 생각으로 도로 앞에 불법 주정차를 했다면 이 일대는 항상 교통대란으로 몸살을 앓을 것이다.
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종합분석센터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 우리나라의 자동차 1만대당 교통사고 사망자수는 2.9명으로 멕시코, 칠레를 제외한 30개 OECD 회원국중 28위다.
교통후진국을 면치 못하고 있는 우리의 자화상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민들의 운전 습관 등이 개선되면서 교통사고 사망자가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본보는 최근 경기지방경찰청과 손해보험협회와 교통사고를 대폭 줄이자는 데 의견을 같이해 업무협약을 맺었다.
교통사고 사망자 절반 줄이기는 한두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는다.
우선 교통사고가 많이 발생한 지자체에서는 교통안전시설 등에 대한 예산을 후순위에서 앞으로 끌어내고 확대해야 한다.
운전자들은 신호위반, 과속, 불법주차는 잊어버리고 성숙한 교통시민의식을 가져야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함께 이뤄져야만 OECD 꼴찌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다. 본보가 매주 발표하는 경기·인천지역의 교통사고 지수가 매주 내려갔으면 한다.
케냐에서 만난 운전자와 일본국민들의 ‘교통시민의식’을 본받고 기억해야 할 때다.
정근호 사회부장
로그인 후 이용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