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스님들 사는 청도운문사 뒤뜰 천년을 살았을 법한 은행나무 있더라
그늘이 내려앉을 그늘자리에 노란 은행잎들이 쌓이고 있더라
은행잎들이 지극히 느리게 느리게 내려 제 몸 그늘에 쌓이고 있더라
오직 한 움직임
나무는 잎들을 내려놓고 있더라
흘러내린다는 것은 저런 것이더라 흘러내려도 저리 고와서
나무가 황금 사원 같더라 나무 아래가 황금 연못이더라
황금빛 잉어 비늘이 물 속으로 떨어져 바닥에 쌓이고 있더라
이 세상 떠날 때 저렇게 숨결이 빠져나갔으면 싶더라
바람 타지 않고 죽어도 뒤가 순결하게 제 몸 안에 다 부려놓고 가고 싶더라
내가 죽을 때 눈 먼저 감고 몸이 무너지는 소릴 다 듣고 가고 싶더라
시단의 어느 노시인이 저 새파랗게 젊은 시인에게서 “終心(종심)을 읽었노라” 말 한 적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은행나무 아래 제 그늘 넓이만큼 조용히 떨어져 쌓이는 은행잎들을 보면서 생의 종착지에 다다른 자가 길게 내쉬는 한 호흡을 듣는다. “꽃잎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 라는 조지훈의 시를 넘어서 그는 나무의 내면으로 한 발짝 더 걸어 들어가 “바람 타지 않고 죽어도 뒤가 순결하게 제 몸 안에 다 부려놓고 가고 싶다”고 내면의 나직한 울림 너머 울음에 가까운 나무의 흐느낌을 듣는 것이다. 더욱 더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것은 “내가 죽을 때 눈 먼저 감고 몸이 무너지는 소릴 다 듣고 가고 싶다”는 저 귀신 곡하는 소리이다. 그는 새파랗게 젊은 나이에 정말이지 생의 끝에서나 들을 수 있는 제 안의 귀신이 하는 소릴 받아 적는다는 것인가. 이덕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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