뼈가 투명해질 때까지 - 이원규

詩가 있는 아침

말복의 지리산 해발 900미터

 

하늘 아래 첫 동네 가까이

 

나만의 비밀 계곡에 들어가

 

겨울 신갈나무처럼 훌훌 옷을 벗고

 

가랑이 사이 산바람이 지나는 거풍을 한다

 

(중략)

 

마침내 뱃가죽이 얇아져

 

배를 움켜쥐면 손끝에 등뼈가 잡히도록

 

허기가 지고 또 허기가 질 때쯤

 

차고 맑은 물 한 모금의 충만

 

으슬으슬 그녀의 온기 그림기도 하지만

 

그나마 해발 300미터 아래의 이야기일 뿐

 

 

뼈가 좀 시리면 어떠랴

 

겨울 나이테처럼 단단해지거나

 

고드름처럼 좀 더 투명해질 수도 있는 법

 

거풍에 목욕재계하며

 

오늘 하루도 곡기를 끊었다

 

입산 십 년의 뼈가 조금 더 투명해질 때까지

 

생명 평화 탁발 순례의 멤버였던 그는 지리산에 있다. 그런 그가 가끔 산을 내려온다. 그가 산속에서 내려오는 것은 배가 고파서도 아니고 사람이 그리워서도 아니다. 다만, 세상이 어지러울 때 그는 산에서 내려온다. 내려와, 그는 늘 길 위에 있다. 마치 멸족한 인간의 미열을 찾아 헤매듯 그는 하염없는 노숙을 살다가 다시 산속으로 들어간다. 바라건대, 나는 그가 빙어처럼 뼛속까지 투명해져서 지리산 계곡물 속을 유유자적하며 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이덕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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