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정부 때 전국 교사 노동조합(전교조)을 법제화하였다. 그 후 참여정부는 한 발 더 나아가 공모라는 명분으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고쳐 교사가 교감 경력도 무시하고 바로 교장에 임용될 수 있는 무자격 교장 시대를 열어 놓았다. 그뿐만 아니라 금년부터는 무자격 교장의 교육장(장학관) 임용의 길도 열려 있다.(경기도교육청 공모교육장 자격 기준 ‘나’ 항)
현재 교사, 교감, 교장의 자격증 제도의 근간이 만신창이가 되어 일선 현장의 혼란과 교육적 역기능은 필설로 형언할 수가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교육계를 어지럽히며 퇴출 요인이 있는 일부 몰지각한 교장이 있다는 것도 인정한다. 하지만 이들로 인해서 평교사를 교감도 아닌 교장으로 바로 임용한다는 것은 인사질서의 혁신이 아니라 파괴다.
이런데도 교과부는 정책 전환 의지가 전혀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이 기회에 교원 자격증 제도를 완전히 일몰 시키든지 아니면 무자격 교장 공모의 명분처럼 교사 자격증 없어도 교사로 임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라고 정치권과 정부에 제안하고자 한다.
말 나온 김에 첨언하면 현재 교감 자격연수는 180시간, 교장연수는 360시간인데 무자격 교장은 교사에서 60시간(2주)만 연수받으면 바로 교장으로 임용된다. 따라서 교감, 교장 연수 무용론이 비등하다.
‘촛불은 꺼지기 전에 가장 밝다’는 증권가의 격언처럼 요즘 교육계의 장밋빛 정책이 현란한 듯하지만 속으로는 중병이 들어가고 있다.
교육에 인생의 혼을 묻으려는 다수의 교원들에게 무자격 교장의 행간에 숨은 ‘노림수’에 허탈감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 그들은 노동운동 경력으로 인해 유명함은 될 수 있을지언정 유능함하고는 차원이 다르다. 결론적으로 무자격 교장의 산물은 특정 이념과 노동운동 그리고 포퓰리즘이 뒤엉켜 만들어 낸 합작품이다.
따라서 실패한 무자격 교장보다는 일정 비율의 무자격 교사 공모제가 더 타당하고 설득력이 있다. 교사 자격증이 없다 뿐이지 인품과 교수에 대한 열정 등 직무수행 전반에 더 잘 할 수 있는 인재가 얼마든지 있다는 세간의 여론이다.
사회가 언제까지나 교사에 우호적이거나 협조적일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낭만이다.
이 시점에서 국민들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당장의 이익과 우리가 잃을 수 있는 가치의 무게를 저울질해 봐야 한다. 당신이 구식이라고 버린 스카프(한국의 교육)를 다른 사람(미국의 오바마)이 주워 ‘정말 멋지고 아름답다’고 열광하면 버린 스카프를 다시 갖고 싶은 마음은 인지상정이 아닌가.
‘혁신’은 선이고 ‘전통(보수)’은 악이라는 발상은 포퓰리즘 차원에서 교조화되기도 하고 민주주의라는 명분으로 세력화하기도 한다.
소말리아 해적들에게 한국산, 미제, 일제, 독일제, 러시아제, 휴대폰을 보여주며 고르라고 한다면 한국산을 고른다고 한다. 이게 다 선배 교사들의 헌신적인 교육의 결과다. 연애소설에는 ‘실연 당한 여인보다 잊혀진 여인이 더 불행하다’고 한다.
겉으로는 교육 혁신을 외치며 속으로는 상위직급 권력욕에 눈이 먼 모순된 표층구조의 심층을 이루는 일부 교사가 교육계의 미꾸라지 노릇을 하고 있다.
학부모들에게 달콤한 정책과 약속이 장마철 흙담처럼 위태롭게 느껴지는 것은 필자만의 기우일까?
김기연 여주점동초등학교장 전국 초·중등교장회 대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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