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은 즐거운 계절이다. 작열하는 태양빛 아래 바다로 산으로 휴가를 떠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OECD 30개국 중 유일하게 연간 2천시간이 넘는 세계 최장근로시간 국가인 우리나라에서도 여름 휴가는 중요한 생활양식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앞으로의 여름 휴가는 작열하는 태양이 아니라 난폭한 장대비와 만나는 경우가 많아질 것 같다. 지난 30년동안 시간당 30㎜ 이상의 폭우가 쏟아진 날이 11.7회에서 22회로 2배 이상 늘었다. 올해 7월 한달간 서울에 내린 비의 양은 1,311㎜ 로 연평균 강수량에 육박했다. 금년 7월 서울에서 비가내린 날은 23일, 주요 여름 휴가지인 강릉에서는 24일이었다. 여름철 강우가 전통적 장마패턴에서 벗어나 마치 아열대지방의 우기와 유사한 양상을 띠게 된 것이다.
기대했던 휴가 스케줄이 폭우로 망가지는 것은 당사자뿐만아니라, 지역경제나 국가적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실제로 올해의 폭우로 동해안을 찾은 피서객이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서 19%나 감소했다. 이제 휴가는 개인적 삶의 재충전 차원을 넘어 일에 있어서의 창의성 강화, 여행을 통한 성찰과 교양의 획득, 내수확대 등 건강한 사회의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이다.
이즈음에 우리의 휴가패턴을 바꾸어볼 필요가 있다. 늘 같은 시기에 늘 가던 장소로 휴가를 감으로써 교통체증과 바가지요금에 짜증과 피곤이 가득한 경험으로부터 탈피해보는 것은 어떤가? 휴가의 시기와 패턴, 목적지를 다양화하면 기후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 혼잡문제 해결, 내수진작, 지방의 경제적, 문화적 발전 등의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다행히 10여 년 전 간행된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와 근래의 인기 TV 프로인 1박2일을 통해 새로운 여행 방식이 주는 재미에 대해서는 대중적 인식이 넓어지고 있다.
예컨대 12월 마지막 주, 5월초의 연휴 기간 등을 여름휴가철에 버금가는 재충전의 시기로 정하고, 문화유산 답사, 농촌체험, 자연생태체험, 휴양테라피, 레저스포츠 등 다양한 휴가 프로그램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
휴가문화를 가장 먼저 정착시킨 영국 등 유럽에서도 20세기 후반부터 여름철 해변 레저휴양 중심에서 사계절 문화·생태체험형 휴가로 빠르게 전환하고 있다. 이는 소득 증가, 문화적 성숙 그리고 삶에 대한 가치관 변화에 수반되는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우리도 휴가패턴 다양화의 경제·문화적 여건은 충분히 형성되었다. 휴가에서 맛보게 될 새로운 체험과 재미를 생각하면 여행의 설레임과 효과는 배가될 것이다.
이정훈 경기개발연구원 문화관광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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