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기의 태극은 우주 만물이 생긴 근원이다.
동양사상의 태두다.
세계 200여 나라는 나라마다 국기가 있다.
그 나라 국기는 그 나라 국민의 사랑을 받는다.
우린 태극기를 과연 얼마나 사랑하는가, 의문이다.
나는 1970년 대한국기원 강사를 시작으로 국민정기연구지도원 주임강사, 사단법인 대한민국 국기선양회교육이사, 태극기사랑봉사회 회장 등을 지내면서 40여 년 동안 국기 홍보교육에 심혈을 쏟아 왔다.
1991년 이후 매년 서울 탑골공원 앞에서 3·1절과 광복절 기념행사를 개최하며 낡은 태극기를 무료로 교환해주고 차량용 태극기 달아주기, 태극기 그리기운동을 전개했다.
때로는 아파트 단지에 태극기를 기증하고,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등에게 태극기 홈세트와 해설집을 보내는 등으로 국기에 대한 인식 제고를 촉구하기도 했다.
세종문화회관, 정부 제1청사, 경기도청 등에서 10여 차례에 걸친 ‘태극기 변천사 전람회’를 개최했으며 현재 상설 태극기교육장을 수원에 두고 있다.
이런 날더러 “태극기에 미쳤다”는 사람도 있고 “태극기 박사”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아무튼 이로 인해 개인적으로는 대통령 표창을 받는 영예도 있었지만 여전히 나는 태극기 사랑에 배고파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국경일에 국기 다는 집이 별로 많지 않다는 것이 서글프다.
국경일의 국기 게양은 의무다.
의무는 팽개치고 그저 공휴일로 놀기에만 바쁘다.
국경일에 국기 게양이 안돼 썰렁한 아파트단지나 주택가를 보면 순국 선열과 전몰 장병들 보기가 부끄럽다.
1920년 청산리전투에서 일본군 1개 연대를 궤멸시킨 독립군 대첩의 김좌진 장군 지휘 군기는 바로 태극기였다.
3·1독립만세운동, 상해 임시정부 활동, 윤봉길 이봉창 의사 등 의거 또한 태극기 아래서 거사됐다.
중국의 이국 광야에서 일제와 맞선 수많은 무명 독립군 용사들 또한 태극기 아래서 싸우다가 숨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6·25 전쟁 땐 학도병들이 태극기에 혈서로 자원입대하고, 나라를 지킨 국군 전몰 장병들 역시 태극기 아래서 산화했다.
국경일에 태극기 다는 일이 힘든 것도 아니다.
우리들에게 오늘이 있게 해준 순국선열 및 전몰 장병들 생각을 하면 국기를 다는 경건한 마음이 있어야할 터인 데 그렇지가 않다.
태극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어서라고는 믿지 않는다.
무심해서다.
무심은 사심이나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도리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즉 국경일에 태극기 게양을 태만히 하는 것은 국경의 도리를 망각한 처사다.
태극기는 실제 유서 깊은 국기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 창공에 태극기가 휘날린 것이 지금으로부터 124년 전이다.
1887년 당시 조선 주미공사관 돔 모양의 지붕 위 기봉에서 태극기가 휘날렸다.
1948년 5월 평양에서 열린 북한 노동절 행사의 단상 요인석 뒤에 걸린 대형 깃발은 다름이 아닌 태극기였다.
그해 9월 인공정권을 세우면서 인공기를 만들기 전까진 그들 역시 태극기를 썼던 것이다.
태극기의 이 같은 전통성과 정통성은 내가 수집 소장하고 있는 자료 사진이 입증하고 있다.
독립운동 및 6·25 전쟁 관련의 태극기 자료 사진 역시 같다. ‘태극기 변천사 전람회’는 100여 점이 넘는 이런 자료를 전시한 것이다.
국경일이면 태극기 물결이 넘치는 아파트며 주택가를 보고 싶은 것이 아마 나만은 아닐 것이다.
남이 국기를 게양 안 하니까 나도 안 다는 마음보다, 남들은 안 달아도 나는 단다는 마음이 국경일의 태극기 물결을 이룰 것으로 안다.
국경일에 자기 집 대문에조차도 태극기를 달지 않는 것에 대해 부끄럽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 박주형 태극기사랑봉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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