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오늘 아침에 이런 얘기를 하더군요. 큰아이의 밥상을 차리는 데 누가 한 달에 천만 원을 준다 해도, 한 달에 백만 원 주는 곳에서 일하는 것이 덜 힘들거라고 말입니다.
상당히 파격적이고 도전적인 언사이지만 아이의 밥상 차림이 그만큼 힘들다는 이야기이고, 아내가 집안일에 무심한 남편에게 전하는 일종의 항의 표시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 우리의 식탁에 오른 음식을 한번 상상해보십시다. 밥, 어묵국, 김치, 김, 조기. 이 정도네요. 현미경으로 보면 수분,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유기물, 비타민 이 정도지요. 그럼 식탁에서 떨어져서 멀리서 보면 농산물, 수산물 이 정도로 보이면서 더 멀리서 보면 그냥 음식이겠지요.
아내의 이야기를 풀어보면 한의사이면서 전통적인 식습관이 교육이 되어온 사상과 현대화된 패스트푸드에 익숙한 아이의 식습관이 충돌하고 타협하거나 조정되지 못한 일방적인 관계에 연유됨을 알 수가 있습니다.
어미로서, 혹은 한의사로서의 이성적 접근이 아이의 미각이라는 감각적 고려를 하지 않음이 화해되지 못하고 서로 불신 지경에 빠져든 게 아닌가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러한 일로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이 문제가 비단 저의 집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극단적인 육식의 편식, 채소섭취의 혐오, 패스트푸드 섭취로 크게 나뉘는 우리 청소년세대의 음식문화가 아닌가 싶습니다.
학생이나 어른이나 피곤하다는 것은 긴장과 경쟁의 산물입니다. 어미나 아이의 생각은 바로 그러한 현실적인 조건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조건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피를 말리는 경쟁과 위험 속에서 인체는 긴장하고 그러한 긴장을 해소할 에너지를 보급받고자 하는 것이지요.
음식은 단백질이나 지방의 조합이 아닙니다. 설령 구성 성분이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로 되어 있다 해도 그러한 음식(물질)은 전혀 차원이 다른 것이지요. 우리가 먹는 음식은 단순한 미시적인 조합이 아니라 우주의 거대한 순환인 셈이죠. 즉 하늘(순환)과 땅(미시적인 조합) 그리고 인간만의 독특한 영혼(사랑이나 존경, 감사)이 들어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을 먹는 것이지요.
아이의 식습관은 사회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어미와 아비도 살아온 경험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개인의 욕구와 사회적인 조건 속에서 고민하는 우리 아이들을 볼 때 이는 제 가족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 문제와 같이 순환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만 하며 부모로서 그 자체를 인정해주는 따스한 사랑만이 끝까지 믿어주는 후견자로서의 역할만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부모들의 역할이 아닌가 싶습니다. 아니면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잔 다르크가 되던지 말입니다.
정경진 경기도한의사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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