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해군의 잠수함 함장을 지냈고 지금은 중국 운남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는 개빈 멘지스는 ‘1421: 중국이 세계를 발견한 해’를 2002년 출간했다. 2003년 뉴욕타임즈의 베스트셀러에 오른 이 책에서 그는 명나라의 정화함대가 태평양-북극해-대서양을 항해하면서 그린랜드를 일주했다고 주장했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픽션이라고 비판하지만 여름철 북극해의 자유항해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근대에 와서는 1878년 핀란드의 탐험가 노르덴스키올드가 정화함대와는 반대 항로로 대서양-북극해-태평양 항해에 성공했다.
세계인구의 90%, 세계 육지의 67%가 지구의 북반구에 몰려 있고 그 정점에 북극이 있다. 항상 얼음과 빙하로 뒤덮여 있다고 믿는 북극 지역은 거대한 바다이며 평균 수심이 1천205m, 면적은 한반도의 60배가 넘는 1천257만7천㎢에 달한다. 그리고 베링해협을 통해 태평양과 연결되고, 케네디 해협 등을 거치면 대서양으로 나갈 수 있다. 겨울에는 1~15m 두께로 얼음이 얼고, 여름에도 빙하로 인해 항해가 거의 불가능했다. 태평양과 대서양을 잇는 북극항로의 자유항행은 오래된 꿈이다. 탐험본능의 발로이기도 하겠지만 지름길의 경제적 가치는 너무나 크다.
최근 들어 지구 온난화로 북극의 얼음 두께와 넓이가 급속히 줄어 들면서 엄청난 변화가 생기고 있다. 세계 석유매장량의 13%, 천연가스의 30% 등 지하자원이 속속 발견되는 것은 물론 무엇보다 해운 물류에 혁명이 일어 나고 있다. 2009년 8월 독일 브레멘 소재 벨루가 해운사 소속 2척의 상선 프레터니티호와 포오사이트호가 한국의 울산을 떠나 쇄빙선의 도움 없이 북극해를 거쳐 유럽 최대의 무역항 로테르담에 안착했다. 이 북방루트는 기존의 한국-수에즈-로테르담 남방항로보다 무려 4천nm (7천8㎞)가 단축되어 항해일수에서 10일, 척당 약 4억5천 만 원의 코스트가 절감되었다. 보너스로 소말리아 해적의 위협도 없었다.
지난 1953년~2007년까지 여름철 북극의 해빙면적은 3배나 빠른 속도로 감소 중이다. 향후 100년간 6~7°C이상 추가 기온상승과 이로 인한 해빙면적의 급속한 증가가 전망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2020년 이후에는 연중 100일 이상 북극항로의 자유항해가 가능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2018년부터 여름철에는 아예 북극에서 얼음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예측하기도 한다. 러시아, 노르웨이, 독일 등은 이미 여름철 북극 상업항해에 성공했다. 우리나라의 극지연구 쇄빙선 아라온호도 북극의 변화와 미래 대응을 연구하기 위해 지난 7월 북극해로 떠났다.
우리나라 경제는 절대적으로 수출입에 의존하고 있고, 세계5위의 교역국가로 발돋움하면서 그 정도가 더 심해질 것이다. 시간의 단축, 비용의 절감, 안전의 확보 등 해상물류의 효율화에 교역경제의 사활이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대의 생산지대이자 소비지대이며 인구의 50%가 몰려 있는 수도권의 경우 북방루트는 새로운 메시지이며 길이다. 평택, 인천, 광양, 부산, 울산을 거쳐 유럽을 가고 올 때, 수에즈를 거치는 남방 우회항로보다는 북방루트가 수도권의 대외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 자명하다. 강원도 동해안을 거치는 경로는 추가로 2~3일을 더 단축시켜 교역조건의 현저한 개선을 가져올 수 있게 할 것이다. 수도권과 유럽을 잇는 북방루트에 보다 많은 연구와 노력을 투입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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