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행사 연설문, 그 지명의 레토릭

‘나는 베를린 시민입니다.’ 1963년 6월 26일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서베를린 시청 앞에서 행한 연설의 일부이다. 소련과 동독 공산정권에 에워싸여 육상보급로가 차단되어 고립된 수 만 명의 서베를린 시민을 향해 젊고 박력 있는 케네디 대통령의 이한마디는 그들과 일체감을 보여줌으로서 미국이 베를린 시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자유를 수호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받아들여져 베를린 시민뿐 아니라 자유진영 모두를 열광케 했다.

 

이렇듯 연설문에서 저명인사가 어떤 특정 지명을 언급할 때 상당한 파급효과를 낼 수 있다. 특히 전투를 치른 지명일 때 그 역사성과 정당성은 더해진다. 노르망디, 게티스버그, 워털루, 보르디노, 갈리폴리 그리고 인천 상륙작전에 이르기까지.

 

필자는 금년 호주군 한국전 참전기념행사에 두 번 참석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 4월 24일, 호주와 뉴질랜드 한국전 참전비앞에 수 많은 귀빈들이 방문하였다. 비온 뒤 맑게 씻긴 눈부신 4월의 신록속에 눈에 뛰는 한 여신이 있었다. 줄리아드 길라드 호주총리였다.

 

돌이켜보면 호주총리가 호주의 현충일 안작데이(4월25일)를 전후하여 대한민국에서도 오지에 속하는 조그만 목동리 계곡을 찾아 호주군 가평전투 60주년 기념식을 갖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날 총리와 같이 동행한 수백명의 호주군참전용사들은 팔순을 넘긴 고령으로 거동이 불편한 분들도 많았으나 그보다 더 큰 문제는 6·25한국전쟁 때 적군이었으나 현재 호주 교역상대국 1위인 중국이 호주총리의 가평전투 60주년기념식 참석을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호주총리는 이날 한국방문을 마친뒤 중국방문이 예정돼 있어 더욱 난처한 입장이었다.

 

그러나 호주총리는 대한민국 국방부장관, 국가보훈처장, 가평군수, 삼군사령관, 수백명의 호주 및 영연방참전용사 앞에서 다음과 같은 가평전투60주년 기념사를 하였다. “바로 그날밤, 수만의 중공군은 봄을 맞이하여 그들의 주 침투경로인 가평계곡을 따라 심야에 공격을 감행해 왔습니다. 그것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함락하기 위한 적군의 마지막 시도였습니다. 그날밤 참전 호주군에게 운명의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무전기는 작동되지 않았고, 통신라인은 끊기고, 인해전술로 밀고내려오는 중공군에 비해 수적인 열세 속에서 여러분은 싸우고 또 싸웠습니다. 그날 밤 바로 여기에 여러분이 있었습니다. 이곳이 바로 가평입니다.”

 

부드러운속의 강인함! 여신같은 외모와 달리 총리의 연설은 단호하고 카리스마 넘쳤다. 공산주의를 배격하고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호주국민의 신념을 “이곳이 가평입니다”라는 한마디로 함축했다.

 

지난 8월 20일 나는 또 호주 골드코스트시 캐스캐이드공원에서 거행된 퀸즈랜드주호주군 한국전 참전비 제막식장에 있었다. 국가보훈처, 가평군, 호주연방정부, 퀸즈랜드주, 골드코스트시의 후원에 힘입어 퀸즈랜드한국전참전비건립추진위원회의 노력으로 완공된 역사에 길이 남을 참전비가 완공되었다. 애나블라이 퀸즈랜드주 수상은 카네이션을 상징하는 붉은 드레스를 입고 나와 수백명의 한국전 참전 용사 앞에서 “호주군은 한국전에서 한국군과 함께 적과 싸우며 생사를 같이하였습니다. 전투에 패했을때 한국군과 함께 슬퍼하였고 전투에 승리하였을 때 한국군과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한국전쟁은 더 이상 잊혀진 전쟁이 아니고 영원히 기억되어 질 것입니다.” 라고 기념사를 하였다.

 

내가 경험한 두번의 호주군보훈행사기념식 연설문에 나타난 지명들 ‘한국전, 가평전투, 마령산전투, 사미천전투’는 나보다도 먼저 호주국민과 호주군참전용사들에게 더 이상 잊혀진 단어가 아니고 그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인 자유와 평화 민주주의수호의 상징으로 받아들였다. 순간 나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부끄러움이 앞선다. 나는 주인인가? 나그네인가?

 

서대운 가평군청 교육협력과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