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람은 남과의 경쟁심이 유난히 강하고 1등 지향적이다. 국제적인 경기에서 1등을 못하고 2등을 하게 되면 몹시 억울해하고 국민에게 크게 미안해하고 죄스러워하기도 한다. 그러나 전 세계인들이 겨룬 시합에서 2, 3등이라도 한 것이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근래에 와서 한국의 위상이 여러 분야에서 크게 높아졌다. 자원도 별로 없고 축적된 기술도 별로 없던 나라가 이만큼 발전한 것은 둘째 가라면 서러워하고 첫째만을 추구하는 한국인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의학분야에서도 그렇다. 우리나라는 조선 말기의 통상수교거부정책 때문에 뒤늦게 서양현대의학을 받아들였다. 후발주자였지만 선진국에 뒤지지 않으려고 피나는 노력을 한 결과, 이제는 한국의학이 세계적인 수준에 오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최고, 일류만을 좋아하는 우리의 습성의 부작용도 적지 않다. 요즈음 전 세계적으로 불황인데도 우리나라의 명품시장은 호황이라고 한다. 지방에 사는 학생들이 지방대학은 외면하고 서울의 명문대학으로만 몰려들어 교육의 지역편차를 심화시키고 있다. 지방에도 좋은 대학병원, 종합병원이 많이 있는데 서울의 유명 대학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려와 서울의 유명병원에서는 3~6개월, 심지어 1년이나 기다려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경증환자까지 대학병원으로 몰리면 정작 대학병원에서 전문치료를 받아야 하는 중환자는 진료기회를 박탈당하거나 진료를 지연해야 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환자들은 병원을 선택하는 데 있어 유능한 의사, 고급의료장비, 좋은 시설, 친절도, 병원이용의 편의성 등을 고려한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이들 요소 중에 특히 고가의료장비에 더 많은 가중치를 두는 경향이 있다. 우수 의료진을 갖췄어도 첨단의료장비가 없으면 2, 3류 병원으로 낮게 평가된다. 병원의 규모나 질환의 경중을 고려해 볼 때 첨단장비가 꼭 필요하지도 않은데, 첨단장비가 없으면 환자들이 다른 병원으로 발길을 돌린다. 그러다 보니 작은 병원에서도 출혈하면서 경쟁적으로 비싼 장비를 구입하는 실정이다. 이렇게 병원 마다 필요 이상의 고가장비를 구입하다 보니 우리나라가 환자 수 대비, 국민소득대비 첨단장비(CT, MRI, PET 등)보유율이 세계 최고라고 한다. 그러니 외국의 의료기기 제조회사들이 한국을 봉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환자들이 이용할 병원을 선택하는 기준이 우수의료진보다 고가의료장비 보유 여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현명치 못한 관행은 결국은 돌고 돌아서 우리 국민의 의료비 상승으로 귀착되는 것이다.
김현승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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