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민주주의국가에서와 같이 우리나라에서도 재판에서 3심제도를 택하고 있다. 1심(지방법원)과 2심(고등법원) 재판에 이어 3심으로 대법원재판이 있다. 물론 어느 사건이나 3심까지 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원고 측이나 피고 측이 1심판결을 받아들이면 고등법원이나 대법원까지 갈 필요가 없을 것이고, 어느 한 쪽이 1심판결에 불복하면 항소하여 2심까지 가고 또 2심판결을 수용할 수 없으면 상고하여 대법원에 가서 재판받게 될 것이다.
일반적으로 재판진행과정이 매우 느려서 수개월 내지 수년이 걸린다. 이처럼 재판진행이 더딘 것은 사건이 많아 판사들에게 업무가 과중 부담되어 지연되는 것도 있고, 또한 사건을 올바르고 공평하게 판결하고자 여러모로 연구하고 검토하느라고 느려지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사건을 요모조모로 조사하고 자세히 분석, 검증하여 내린 판결이 고등법원에서 바뀌고 또 대법원에서 다시 반전되는 경우를 드물지 않게 보게 된다.
한편, 의료인의 처지에서 의료사고에 대해 생각해 볼 때 아쉬운 점이 있다. 우리의 인체는 수많은 조직과 세포들이 서로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어 잠시도 쉬지 않고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다. 생리적 현상과 병리적 현상이 수시로 변할 수 있는 가변적 개체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확한 진단과 올바른 치료를 동시에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환자의 생명보전을 염두에 두지 않고 오로지 진단만을 목표로 한다면 아마도 더 빨리, 더 정확하게 진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명에 위해를 가하지 않으면서 질병치료도 하고 진단작업을 병행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올바른 진단과 최선의 치료가 쉽지 않기 때문에 대학병원에서도 의사들이 모여 환자의 상황을 놓고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며 협동진료를 하는 것이다.
재판에서 다루는 사건은 가변적인 것이 아니고 이미 정지된 사건이다. 이런 사건을 다각도로 자세히 조사, 검토하고 관련 법률 서적을 찾아 공부하고 유사판례를 찾아 연구하고 내린 판결이 1심, 2심, 3심에서 각각 다르다면 국민은 누구를, 어느 법원을 믿어야 할 것인가? 그동안 판사가 오판 때문에 손해배상을 하거나 처벌받거나 구속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법원판결에서의 오판은 이해해 주면서, 변화무상한 인체의 제한된 여건하에서의 진단과 치료에 작은 오류도 용납하지 않으려는 것은 너무하지 않은가? 재판에서는 3심까지 여유(?)를 가지면서, 의료에서는 단 1심만으로 완벽한 진료를 요구하는 것은 좀 불공평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작은 실수도 없도록 진료의 완벽을 추구하고는 있지만, 인간으로서 한계가 있는 것이니까.
김현승 경기도의료원 파주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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