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명이 훨씬 넘는 험난한 관문을 뚫고 남은 사람은 6명, 드디어 결전의 날이 왔다. 던져진 구겨진 종이쪽지에 발표 순번이 적혀 있었다. 장난기로 제일 멀리 있는 심지를 뽑았다. 드디어 마이크를 손에 잡고 첫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
“저는 지난 3월 오랜 직장을 그만두고 쉬고 있는데 비상재난협회에서 ‘어린이안전관리법 조금 알지요?’ 라는 제의에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안전교육을 진행하는 동안 매년 놀이터에서 오산 시민만큼이나 많은 어린이가 다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으며 ‘어린이 안전이 국가의 운명을 좌우한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반갑습니다. ○○○라고 합니다. 자, 그럼 도표를 보면서 시작하겠습니다. 최근 5년간 유치원·초등학교 어린이는 16%나 줄었으며 교통사고도 22%나 줄었습니다.
그러나 학교 내 안전사고는 2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최근 보도자료에 따르면 놀이터에서 다쳐 청구된 보험건수가 12만 건이 넘었습니다. 이는 교통사고 청구 건수의 2배, 화재사고의 건수의 3배 가까운 수치입니다. 어린이들이 학교에서 매일 300명 이상이 다치는 셈이지요.”
각종 통계자료와 기구별 사고분석, 반세기 전 신문기사 거리, 오바마 대통령까지 들먹이며, 거기다 한술 떠 방청객과 ‘새 나라의 어린이’를 함께 합창하면서 잘 빠진 차트는 순조롭게 넘어가고 있었다.
이제 중반전.
“2008년 1월 27일부터 시행된 어린이놀이시설 안전관리법에 따르면, 놀이기구 설치자가 설치검사를 받아서 관리주체에 어린이놀이시설을 넘겨주게 됩니다. 관리주체는 2년에 1회 이상 정기시설검사를 받고 매월 자체적으로 안전점검을 실시해야 합니다.
점검기록 서류는 3년간 보관해야 하며, 점검결과 위해 우려가 있는 시설은 1개월 이내에 안전진단을 신청해야 합니다. 재사용이 불가하여 철거하게 되면 관리감독청에 통보해야 합니다.
또 인도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어린이놀이시설 사고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해야 하고요, 6개월 이내 안전교육도 이수해야 합니다. 또 사망, 골절상 등 중대한 사고가 발생한 경우 보고도 해야 합니다.”
마침내 종반전에 들어섰다. 어린이놀이시설의 시설기준 및 기술기준을 설명하는 단계, ‘놀이터 진입로는 도로나 주차장을 가로 질러 설치되면 아니 된다.
놀이기구 별 최소공간과 충격구역이 필요하다’며 어린이 추락 장면, 입고 있는 벙거지가 미끄럼틀에 얽매여 사망하는 동영상 등 자칭 ‘준비된 최고의 장면’을 보여주는 동안 강의는 물흐르듯 잘 넘어갔다.
지금부터는 발표만 기다리는 시간, ‘지난 보름 동안 얼마나 고생했는데….’ 하면서 한숨을 돌리는 순간 큰 충격이 스쳐갔다. 아뿔싸! ‘반갑습니다. ○○○입니다’ 라는 내 소개를 빠뜨렸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집을 나설 때 아내에게 농담삼아 “벌써 떨리는데…” 하니까 구심을 주었는데 잘못 받아먹었나 아니면 심지뽑기를 잘못 했나 등등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수없이 많은 안전교육을 진행하면서 그동안 갈고 닦은 고도의 기술을 이번에 유감없이 발휘했어야 했는데, 거대한 포상금은 다른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거미도 줄을 쳐야 벌레를 잡는다’는데 아마 노력이 부족했던 모양이다. 모처럼 흥미진진하고 긴장감 넘치는 강사 경진대회는 이렇게 끝이 났다.
어린이놀이시설 설치검사기관이 그동안 2개소뿐이었는데 행정안전부로부터 지난 7월 말부터 비상재난협회도 설치검사기관으로 추가 지정되어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어린이들의 안전을 위해 모든 놀이터가 안전하고 편안한 놀이기구로 탈바꿈되는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최 종 효 비상재난안전협회 안전관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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