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친구의 장인께서 104세 일기로 12월 새벽에 돌아가셨다. 전날 막내아들이 들렀을 때 “물 좀 사오라” 해서 준비해 드렸더니 “고맙다”고 한 게 마지막 말씀이셨다. 다음 날 아침에 들렀더니 바깥에 신문이 그대로 있어 ‘이상하다’ 여기면서 집 안에 들어가니 소파에서 잠시 쉬시는 모습으로 계셨다 한다.
인간의 숙명인 ‘생로병사’의 필연적인 늙고 병드는 노병(老病)과정을 거치지 않고, 태어났다, 청년으로 사시다가 그냥 돌아가신 것이다.
막내아들네 집 근처에 따로 사시면서, 96세로 돌아가신 할머니 병구완을 혼자서 하셨다. 큰 빨래나 밑반찬을 며느리가 준비해 드리는 것 이외에는 식사, 청소, 빨래 등 집안일을 스스로 해내셨다. 교회에 일주일에 2번씩 나가셔서 헌금관리 업무를 담당하였다. “제발 이제 스스로 그만두시라. 누가 아버지 더러 ‘그만 하시라’고 하겠느냐”고 말려도 극구 그 일을 맡으셨다.
어떻게 그분은 그렇게 100세가 넘도록 청년 같은 삶을 살 수 있었을까. 이유를 든다면 우선, 정돈된 삶 덕분이 아닐까 한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서 하느님을 섬기는 목적, 그 한 목적으로 평생을 살아오셨다. 한 교회를 60년 이상 다니고 봉사하셨다. 세상을 살면서 많은 돈, 큰 이름, 큰 권력을 갖겠다는 욕심에서 벗어나 오로지 하나님 한 분을 기쁘게 한다는 마음으로 사신 것 같다.
둘째, 육체적인 차원에서도 그분의 생활리듬은 그야말로 일어나서 잠자리에 들 때까지 대단히 규칙적인 삶이었다. 겨울에도 영산홍의 꽃을 피울 정도로 베란다의 꽃을 가꾸는 것이 취미요 중요한 일과였다.
셋째, 끊임없는 호기심, 학습의욕도 큰 몫을 하였을 것이다. 시간만 나면 성경을 읽고 기도를 하며, 매일 신문과 우편물을 챙기셨다.
넷째,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독립심의 힘이다. 상대방에 폐를 끼치는 일, 심지어 자식들한테까지도 부담이 되는 일은 기대하거나 의지하지 않는, 지극히 독립적인 생활방식을 쭉 해오셨다.
다섯째는 돌아가시는 그날 까지 ‘해야 할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눈 뜨면 ‘오늘은 무슨 일을 어떻게 하여야 하지’ 하는 주위로부터 ‘인정받는’ 과업이 있었다.
마지막으로는 타고난 건강이 아닐까 한다. 근년에 찍었다는 영정 사진을 보았는데 100세 노인이라고는 여기지 않는 건강하고 반듯한 자세였다. 바른 생각, 바른 생활을 기반으로 꾸준히 한평생 살아오신 ‘인생 종합 성적표’였다.
티베트 금언에 ‘인생이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 가 바로 우리 자신이고 우리 인생이다.
강 정 호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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