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지난해 공지영의 소설 ‘도가니’가 영상으로 옮겨진 후 우리 사회는 소위 그럴듯한 사람들의 위선에 몸서리를 치게 된다. 사필귀정이지만 지난해 12월에 이르러서야 인화학교 전 교장의 동생이자 도가니 사건의 장본인인 행정실장이 구속되고 뒤늦게 수사가 마무리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이런 사건을 접하면 소위 사회에서 점잖고 좋은 일을 하는 사람들, 혹은 꽤 가진 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서 빚어지는 심각한 악취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일부의 허물이라고 애써 외면할 것이 아니라 심각한 자기성찰이 필요한 오늘날인 것 같다. 그런데 사건을 많이 접하다 보니 ‘도가니 사건’과 정반대되는 일도 있었다. 이른바 ‘역(逆)도가니 사건’이다.
한 시골 마을, 60대 노부부의 이웃에 정신장애를 가진 20살 갓 넘은 여자가 도시생활에 지쳐 귀향한 후 모친과 함께 잠시 머물고 있었다. 그런데 그 처녀가 노부부 집에서 60대 노인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모친이 고소했다.
노인은 자신의 결백을 호소했으나 수사기관은 전혀 들으려고도 하지 않은 채 노인을 구속기소하였는바, 1심 재판부도 고소인 측 말만 믿고 노인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항소심에서 새로운 사실이 드러났다.
노인은 물리적으로 성범죄를 저지를 수 없는 심각한 발기부전환자임이 밝혀졌고 결국 노인에게는 무죄가 선고됐다. 그런데 1년6개월간의 지루한 재판과정에서 이 사건의 실체적 음모가 드러났다.
장애인의 모친이 주변을 포섭한 후 합의금을 받아내기 위해 위와 같은 음모를 꾸민 것이며, 피해자로 자처한 장애처녀의 진술도 모두 그 모친의 사주에서 비롯된 것임이 부가적으로 밝혀진 것이다.
어쩌면 원작 도가니 사건에서는 가해자가 외부사람 중 장애인인 약자에게 절대 그럴 수 없는 분들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자들에게서 비롯되었다면, 역도가니 사건에서는 내부에서 가장 자기편이 되어 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을 수밖에 없는 피해자의 모가 실질적 가해자가 되는 셈이다.
가장 정의에 앞장서고 사회적 약자를 돌봐야 할 기대치를 한몸에 받고 있는 법조인, 복지법인 이사장, 특수학교 교사, 대형교사 목사, 장로에 이어 심지어는 신성불가침의 대명사인 ‘어머니’까지 가세하여 이러한 사회적 믿음을 철저히 배신하는 위 사회현상을 어찌 이해해야 할까.
문제는 마음인 것 같다.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내 마음을 먼저 지키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고 유교에서도 ‘신독(愼獨)’을 강조하고 있다. 새해에는 차분하게 내 마음을 돌아보며 특히 홀로 있을 때 근신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이러한 선한 습관이 나를, 우리를 그리고 사회를 혼란의 도가니로부터 구원해 줄 것이라 믿는다.
양 진 영 법무법인 온누리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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