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아동 살해와 야만사회

[천자춘추]

새해가 밝았다. 하지만, 여전히 우울하다. 지난해 들은 가슴 아픈 사연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작년 12월에 부평구에서 여섯 살 아이가 혼자 잠을 자다가 화재로 목숨을 잃었다. 이 아이의 엄마는 화재 발생 시간에 밖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혼 후 엄마는 월세 10만원의 무허가 건물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비극은 야간에 일하러 나간 사이에 일어났다. 지역의 보육원 원장님으로부터 이 아이의 부모가 모두 보육원 출신이라는 사실을 전해들었다.

 

가난이 대물림되고 있는 현실이 만든 사회적 비극이다. 아이의 삶의 권리가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이것은 전형적인 사회적 살인이다.

 

문제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사회가 아동을 방임하는 사이에 이 비극이 사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이 단지 아무개집의 일로 우리가 모두 공범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데 있다.

 

90년대에도 유사한 사건이 있었다. 1991년에 인천의 동춘동의 월셋집에서 다섯 살 세 쌍둥이가 화제로 숨졌다. 부모는 생계를 위해 용접일과 허드렛일을 하고 있었다.

 

당시 이 사건으로 세상이 떠들썩하였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단지 이런 현실을 개탄하는 분들이 모여 세 쌍둥이의 억울한 ‘죽음’을 기리는 탁아소를 만들었을 뿐이다.

 

이 사건을 다시 떠올리는 이유는 어떤 충격도 아이의 삶의 권리를 이 사회가 책임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20년이 흐른 지금도 우리 사회는 세 쌍둥이의 비극이 되풀이되고 있고, 더 많은 비극이 앞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아이의 삶을 개인과 가족에게 맡겨버린 상황이 지속된다면. 양극화와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는 현실은 더욱 불길한 예감으로 다가온다.

 

‘어떤 가정에 태어나든지 최소한의 보호를 받으면서 잘 자랄 수 있는 권리를 아동이 갖고 있고 아이의 양육이 사회의 책임이다’라는 관점이 사회적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비극은 되풀이될 것이다. 비극은 개인의 통곡이 아니라 사회적 책임의식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야만사회를 살아왔듯이 여전히 살아갈 것 같다.

 

다행히도 이 야만사회를 인지하고 공적으로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 열리고 있는 데서 여전히 희망을 걸어본다. 이번 선거가 정치인들이 선거용 장식품으로 내거는 복지가 아닌, 시민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요구하고 관철하는 공적이 장이 열리길 이 새해에 간절히 기원해 본다.

 

유 해 숙 인천시교육청 교육복지연구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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