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격에 맞는 구호체계 갖춰야

[기고]

지난해 3월 일본 센다이지역에서 지진이 발생했을 당시, 전 세계의 이목은 자연의 무서움과 피해 지역 상황에 집중되었다.

 

필자 또한 시시각각 전해지는 뉴스를 보며 절망에 빠져있을 일본 국민들이 눈에 아른거리며, 당장이라도 현장으로 달려가고 싶었다.

 

필자는 인하대병원 인하사회봉사단장으로서 몽골, 우즈베키스탄, 스리랑카 등 세계 각지의 의료 사각지대를 찾아다니며, 희망의 의술을 전하고 있다. 이렇게 해외의료봉사에 인연을 맺은 것은 지금으로부터 20여년 전이다.

 

개인적으로 휴가를 내서 우즈베키스탄을 다녀온 것을 시작으로, 마음이 맞는 의사들과 함께 팀을 꾸려 외국에 나가기도 하고, 다른 봉사단체를 따라 나서기도 했다.

 

그러던 중 지난 2006년, 인하대병원 인하사회봉사단이 창단되면서 단장을 맡아 지금까지 활동해 오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포스코건설과 함께 인도의료봉사를 다녀와 600여명의 인도 망가흔 지역 주민들에게 의료의 혜택을 전해주었다.

 

봉사단 창단 이후 보다 더 체계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고, 해외활동은 물론 지역사회와 협력하여 지역소외계층, 다문화가정, 외국노동자들에게 의료혜택을 전하고자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의료기관의 사회공헌활동은 보람있고 의미있는 일이지만, 기회비용이 상당히 크다. 왜냐하면 진료 수입을 일부 포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의료기관의 사회적책임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고, ‘지역사회보은’이라는 인하대병원의 설립이념과 임직원의 의지로 우리 봉사단은 타 의료기관에 비해 보다 더 적극적이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필자는 세계 각지를 찾아다니며 의료봉사를 했지만 특히 기억에 남는 곳은 ‘아이티 지진 현장’이다. 지난 2010년 1월 경 22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아이티 지진 당시, 인하사회봉사단은 신속한 응급구호시스템을 구축하여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적십자사와 함께 아이티 의료지원단 2진을 구성, 아이티 현지의 계속되는 여진과 전염병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망설임 없이 뛰어들었다.

 

‘무엇을 상상했든 그 이하의 것을 보게 될 것’이라는 1진 관계자의 말대로 현장은 정말 처참했다. 모든 것을 체념한 듯한 아이티 주민들의 무표정한 모습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한 환자 중에는 지진으로 한쪽 팔을 잃은 사람이 있었다. 항생제를 투여하고 집중 치료한 끝에 상태를 호전시키는데 성공했다. 그 후 무표정하던 그 환자가 웃는 모습을 본 순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보람을 느꼈다.

 

해외 의료파견시 현지 관계자들은 정말 남다른 희생정신과 봉사정신을 바탕으로 최선을 다해 임무를 수행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미흡한 국제구호활동 시스템은 나의 마음을 아프게한다.

 

아이티 지원당시 의료용품을 따로 현장에 보낼 수가 없어 봉사단원이 개인물품과 의료용품을 함께 싸서 가져간 경험이 있다. 하지만 독일 등 선진국들은 달랐다. 컨테이너에 의료지원 장비가 갖춰져 있고, 군용 수송기가 현장까지 실어 날랐다. 컨테이너 안에는 수술용, 내과용 등 병동 기능을 갖춘 텐트가 종류별로 들어있었다.

 

이제 우리나라도 국가 경제력과 국격에 맞는 구호체계를 갖출 때가 됐다. 특히 우리나라는 어려운 시절 외국의 도움을 받아 봤기 때문에 도움을 받는 사람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고, 정이 많아 고통받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가장 큰 장점이 있다. 이러한 국민성과 잠재력을 합하여, 보다 더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활동이 이루어지길 희망한다.

 

인하대병원 사회봉사단은 올해도 지역사회는 물론, 전 세계 의료사각지대에 있는 소외된 인류에 더 많은 의료혜택을 주고자 노력할 것이다. 또한 더 이상의 자연재해로 인한 희생이 없길 바라며, 흑룡의 기상과 힘차게 비상하는 에너지를 이어받아 보다 더 발전되고 성숙한 국제구호시스템이 갖춰지길 간절히 바래본다.

 

이 홍 식 인하대병원 사회봉사단장 마취통증의학과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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