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사항

[천자춘추]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밥을 많이 먹어도 배가 안 나오는 여자로 시작되는 ‘희망사항’은 한때 유명했던 노래이다. ‘난 이런 여자가 좋더라’라고 표현하는 노래의 제목을 희망사항이라고 했으니 이런 여자는 ‘희망사항’에 해당한다는 것일까? 나도 그 노래를 흉내 내 말하자면 난 이런 엄마, 아빠가 좋다.

 

그런데 과연 나만 이런 엄마, 아빠를 좋아하는 것일까? 아니리라. 분명히 많은 사람이 좋아하는 모습일 터. 내가 희망사항이라고 적은 이유는 그렇지 않은 부모들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은 경기도어린이박물관 이야기를 좀 하려 한다.

 

경기도어린이박물관은 36개월 미만의 아이들을 무료로 입장시킨다. 그런데 조건이 있다. 아이가 36개월 미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서류를 제시해야 한다. 증명을 하지 못할 경우 이에 대한 관람객의 반응이 각양각색이다.

 

어떤 사람은 끝까지 우겨가며 아이를 눈으로 보면 모르냐면서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해 책임자를 찾아오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박물관 홈페이지나 앞서 다녀간 관람객들의 블로그를 찾아보지 않고 방문한 자신을 탓하는 사람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다른 방문객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꼭 증명서를 지참하도록 밑줄 쫙 쳐서 블로그에 올려놓는 사람도 있다.

 

환불규정은 기관마다 차이가 있는데, 우리 박물관은 당일에 한해서 환불을 금하고 있다. 이에 대한 반응도 참 다양하다. 방문일이 며칠 지난 후임에도 불구하고 방문일을 잘못 알았다며 환불을 요청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규정을 따르지 못하겠다고 1시간 이상을 실랑이 하다가 직원의 주머닛돈을 받아가는 사람도 있다. 돈이 아깝기는 모두 매한가지 일텐데, 기관의 원칙을 받아들이고 따르는 부모들도 있다.

 

난 이런 엄마, 아빠가 좋다. 공공의 장소인 박물관에서 의자 위에 큰대자로 누워서 잠을 자거나, 박물관에서 무슨 계모임을 하는지 성인들끼리 담소 나누기를 더 좋아하는 부모가 있는가 하면, 아이에게 놀이와 대화로 상호작용하면서 아이들과 좋은 추억을 쌓는 부모들도 있다. 나는 우리 박물관에서 부모가 아이와 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기를 희망한다.

 

현대가족들은 각자의 삶이 분주해 얼굴 보기 어려운 시대를 살고 있다. 외국에서 십오 년을 살다가 귀국해서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학교에서 밤늦게 오고, 남편도 직장일로 바빠 주말이나 간신히 함께 모여 저녁을 먹는 그런 삶이 싫다며 보따리를 다시 쌌던 선배가 있었다. 우리나라 가족의 삶이 그러하다. 그럴진대 어린이박물관에 와서 가족들이 함께 행복하고 좋은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경희 경기도어린이박물관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