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중국 옛말에 ‘치수국평천하(治水國平天下·물을 다스리는 자가 천하를 다스린다)’는 말이 있다. 작년 말 북한강을 끼고 도는 초록색 물 띠를 보며 인간을 실험하는 자연의 위력과 함께 치수의 어려움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작년 11월 중순부터 북한강에서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겨울 녹조현상이 발생하여 수도권 시민들이 쓰는 수돗물에 때 아닌 비상이 걸렸다.
수돗물 흙냄새는 조류의 일종인 아나베나(Anabaena)가 늘어나면서 지오스민(Geosmin)이라는 냄새 물질이 증가한 것이 원인으로 그 농도가 평균 262ng/L로 예년에 비해 2.2~7배나 높게 나타났다.
다행히 인체에는 전혀 해롭지 않고 100℃에서 3분간 끓이면 심한 악취는 사라져서 걱정할 필요는 없지만 일부 시민들은 수돗물에 대한 심미적인 불쾌감을 느꼈을 것이다.
이런 반갑지 않은 불청객은 주로 날씨가 더울 때 슬그머니 찾아왔었다. 여름철 장마 직전에 10~30일 가량 이런 불쾌한 맛·냄새가 지속되다가 장마로 없어지는 게 보통인데 작년에는 이례적으로 추운 겨울철인 11월에 찾아와 올 초까지 우리를 괴롭혔다.
겨울철 맛·냄새는 지구온난화에 의한 기후변화를 주된 원인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11월은 과거에 비해 기온이 4℃나 높았고, 8월 이후에 비가 거의 오지 않아 강수량이 작년 같은 기간보다 400mm나 적었다. 이러한 이상기후가 겨울철에도 조류가 생기기에 적합한 환경을 만든 것이다.
기후변화는 우리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빠르게 또한 직접적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주고 있어 겨울철 조류문제가 올 한해에 국한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겨울철 맛·냄새 발생이 여름철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장기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과거 우리 부모님 세대는 집에 수도를 들인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자랑이고 기쁨이었다. 힘들게 물을 길러 다니지 않아도 될 뿐만 아니라 수인성 전염병으로부터 안전지대인 수돗물에 대한 신뢰감도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그러나 최근 생활수준이 높아지고 환경에 대한 관심으로 수질뿐만 아니라 맛·냄새까지 완벽한 수돗물 품질을 요구하고 있다.
따라서 갈수록 높아지는 국민들의 욕구수준에 맞추기 위해서는 수돗물을 생산하는 정수장에 고품질의 정수처리시설을 설치하고, 수도관을 정비하고 관리하는 일에 집중투자 해야 한다.
우리 K-water에서도 수돗물의 맛·냄새를 없애고 시민들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는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24시간 비상근무를 하면서 정수장에서 분말활성탄을 투입하고, 맛냄새 물질을 하루 1회 이상 분석하는 등 엄격히 수질관리를 해왔다.
그러나 완벽한 수준의 맛냄새물질 제거는 분말활성탄 처리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고도정수처리시설이 필요하다. 고도정수처리는 오존처리, 입상활성탄처리 등을 이용하여 기존 처리방법으로는 제거하기 어려운 물질을 처리하기 위해 추가되는 공정이다. 실제로 고도정수처리시설이 도입된 고양과 반월정수장에서 생산된 수돗물에서는 맛냄새 물질이 거의 검출되지 않고 있다.
수돗물도 이제는 품질경쟁시대이다. 기후변화로 인한 수질악화에 대비하여 최첨단의 고도정수처리공정을 하루 빨리 도입함으로써 수돗물의 맛과 냄새를 온전히 잡아내고 안정적으로 수질을 관리할 수 있는 세계 최고 품질의 수돗물 서비스 시대를 열어 나가기를 기대해본다.
양해진 K-water 수도권지역본부장·환경공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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