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

영화나 드라마가 인기를 끌면 출연 배우는 물론 실제 인물, 심지어 촬영장소와 소품까지 덩달아 인기상종가를 치게 마련이다.

 

각진 구형그랜저 향수와 정동진을 관광명소로 만든 드라마 ‘모래시계’가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최근 개봉한 ‘범죄와의 전쟁’은 영화의 흥행에도 불구하고 실제 범죄와의 전쟁에 대한 관심은 미미한 편이다.

 

영화 ‘범죄와의 전쟁’이 실제 사건에 초점을 맞추지 않은 데다 걸출한 스타들의 연기대결이 관객의 시선을 압도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화를 본 사람들은 하정우의 작렬하는 포스와 최민식의 연기력에 감탄하긴 해도 영화의 스토리나 1990년의 실제의 사건을 입에 올리지 않는다.

 

스타 파워가 현실을 밀어낸 것이다. 그러나 좀 더 정밀하게 들여다보면 원인은 따로 있다. 어느새 관객들이 실제 범죄와의 전쟁에 담긴 정치적 함의를 꿰뚫고 있기 때문이다.

 

일종의 기시감이다. 역대 정권, 특히 정통성이 결여된 정권일수록 정권안정을 위한 기만술로써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는 다양한 가면극을 연출했다.

 

5·16세력이 정치깡패 소탕전을 벌였던 것이 그렇고, 전두환 정권의 반인권적 만행인 삼청교육대가 대표적인 사례이며, 노태우 정권의 민생침해사범일제소탕이라는 이름의 ‘범죄와의 전쟁’ 또한 괘를 같이 했다.

사회 곳곳 자리 잡은 중범죄자들

 

새로운 정권은 늘 자신들의 빈약한 정통성을 만회하기 위해, 그리고 민심을 호도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정권의 구린내를 없애주는 동시에 사회적 병폐일소라는 미명하에 여론 기만술을 활용해왔다. 특히 노태우 정권에게 깡패 혹은 조직폭력배들을 쳐내는 일은 토사구팽의 의미까지 내포한 것이기도 했다.

 

무릇 올바른 정권이라면 국민을 위해, 국가를 위해 정권의 명운을 걸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전쟁도 불사해야 한다. 그래서다.

 

다가오는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이 중요한 이유이다. 소위 ‘2013년 체제’의 도래를 앞둔 시점에서 우리에게 직면한 국내외적 도전에 맞서 전쟁을 치를 능력과 의지, 철학을 가진 정부가 탄생해야 한다.

 

그중 시급한 것은 좀도둑이나 깡패나부랭이와 숨바꼭질하는 ‘좀도둑과의 전쟁’이 아니라 진짜 나라의 경제와 법체계를 좀먹는 ‘중범죄자와의 범죄와의 전쟁’을 치러야 한다. 진짜 범죄자는 누구인가.

 

마침 장정일의 독서일기 ‘빌린 책/ 산 책/ 버린 책’에 범죄 집단의 단서가 등장한다.

‘진짜 범죄’와의 전쟁 필요

 

‘한 나라의 부를 몽땅 차지한 한줌의 독점재벌과 그들의 정권은 국가의 행정 기관을 자신의 업무를 효율적으로 처리해 주는 무료 ‘서비스 기관’으로 축소시키고, 국가의 사법 기관을 자신의 이익을 보호하고 불법을 무마해주는 ‘로펌’으로 전락시키며, 국가의 공권력을 ‘용역(깡패)회사’로 만든다.

 

제2 롯데월드와 삼성 에버랜드는 이들이 어떻게 국가와 정부를 ‘서비스 기관’으로 만들고 ‘로펌’으로 만들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용삼참사의 경우, 경찰이 용역회사의 직원을 불러 물대포를 잠시 잡고 있으라고 했을 뿐이라고 말하지만, 조금 있으면 일개 ‘용역회사’의 말단 계장님이 용산경찰서 서장을 불러 ‘너 물대포 잡아!’라고 시키게 된다. 이게 과두계급의 지배다.’

 

조폭과 결탁해 폭력을 휘두르고, 맷값을 정해놓고 사람을 패고, 배임·횡령에 비자금 범죄를 저지르면서도 버젓이 국가경제의 리더 행세를 하고, 부모가 편법으로 숨겨두었던 차명재산을 서로 차지하겠다며 형제간 법정다툼을 벌이는 이들이야말로 우리사회에서 가장 시급하게 도려내야 할 중대범죄자들이 아닌가. 그들을 소탕하는 것이 ‘진정한 범죄와의 전쟁’이다.

 

최준영 작가·거리의 인문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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