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앞에 서서

교정 울타리 너머 붉은 동백꽃이 고개를 들더니 이내 희망찬 새 학기가 돌아왔다. 가시는 선생님들은 기대와 설렘으로 발령지로 분주하게 떠나고 새롭게 오시는 선생님들은 학생을 맞이할 준비로 바쁘다.

 

그런데 이런 기대와 설렘을 시샘이라도 하려는 듯 학교 울타리 담벼락과 교문 가까운 버스 정류장 옆의 현수막들이 눈길을 끈다. “학교에서는 학생의 의사에 반하여 자율학습이나 방과 후 학습을 할 수 없으니 이런 사례가 발생하면 신고를 하라”는 문구와 신고처가 적혀 있다.

 

자유 시장경제체제하에서 법과 제도가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 기업이나 개인이 이윤을 추구하려는 노력을 평가 절하 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더욱이 질 좋은 교육서비스를 하여 학생들의 학력과 특기를 신장한다고 하니 오히려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학교교문 앞에까지 현수막을 게시하여 학교와 학부모와 학생들 간의 갈등을 부추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만약 사설기관 앞에 공교육 기관에서 이와 비슷한 현수막을 내걸었다면 어떠한 기분이 들까?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기본 상식으로 해석해도 왠지 못마땅하다.

 

학교도 사회의 요구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더 이상 ‘학교라는 울타리’에 학생들을 강제로 가두어 두고 감시하며 가르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대신에 학생의 소질과 능력과 가정형편 등을 고려하여 개개인의 잠재적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알맞은 ‘진단과 처방’을 내리며 지도를 하려 할 뿐이다. 물론 적절한 진단을 통해 처방하여 치료를 해줄 수 있는 곳은 학교와 같은 공교육기관 뿐만 아니라 사교육기관도 포함될 수 있다.

단지 학교는 최선의 교육을 위해 때로는 교육수요자인 학생과 학부모와 소통하고 설득과 권유를 통해 더 나은 교육환경을 마련하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이렇게 다각도로 이루어지는 교육적 행위를 ‘강요’로 간주하여 학교나 교사를 질책하고 불이익을 주면 학교교육은 더 이상 설자리가 없다.

 

빈곤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공교육을 활성화 시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공교육은 공정한 사회를 이루는 자양분이라는 것을 역사가 증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공교육과 사교육은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다. 서로를 존중하며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할 대상이다. 이를 위하여 학교 앞에 현수막을 거는 일은 신중을 기해야 한다. 자기 일이 소중하면 남의 일도 소중하다.

 

김정렬 인천연성중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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