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어덜키드

얼마 전 9시 뉴스에 ‘어덜키드’에 대한 내용이 보도되었다. ‘어덜키드’는 어덜트(adult·어른)와 키드(kid·아이)를 합친 단어로, 어른을 흉내 내는 아이를 의미한다고 한다. 새롭게 만든 신조어다.

 

아이들은 옛날부터 어른들을 흉내 내어 엄마놀이, 병원놀이 등 소위 역할놀이란 것을 하며 재미있게 놀아왔다. 엄마의 뾰족구두와 핸드백을 챙겨 립스틱을 바르고 소꿉놀이를 하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 눈에 그리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런 아이를 보고 어덜키드라고 부르지는 않았다.

 

이는 단순히 아이다운 놀이였고 그러한 놀이를 통해서 아이들은 어른의 역할을 배우며 한편 카타르시스를 하기에, 전문가들은 이와 같은 역할놀이의 교육적 가치를 높이 산다.

 

반면 여기서 말하는 어덜키드란 용어는 어린 여자아이한테 하이힐을 신기고 어른의 옷을 축소한 듯한 옷을 입히며, 방송에 나온 어머니의 말처럼 성장기 어린이의 척추와 건강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이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어덜키드를 만들어준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부모는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19세기 이전 서양의 그림 속 아이들 옷을 보면 그들의 옷은 활발하게 뛰어놀 수 있는 옷이 아니라 어른의 기대를 반영하는 어른과 같은 우아한 옷을 입고 있다. 어떤 그림에서는 아이의 얼굴이 어른의 얼굴을 축소해서 그려져 있다.

아이다운 볼살이나 귀여운 모습이 아니라 약아빠진 아이어른 같은 모습이다. 이러한 그림이 그려진 배경을 보면 이 시기의 아동관을 반영한다. 아이의 입장에서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어른의 가치관과 행동규준을 그들에게 강요하는 사회분위기로부터 나온 것이다.

 

그로부터 지금 몇 백 년이 흘렀다. 현대를 사는 우리는 아이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 것일까? 요즘의 부모들은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예전의 부모처럼 부모의 기대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해주고 아이가 배우고 싶은 것을 가르치는 소위 아동중심의 양육관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아이가 원한다 하니 어린아이에게 하이힐을 신기고 작은 고사리 손에 휴대전화를 쥐여준다는 말인가? 아이들은 아직 자기중심적 사고를 하기 때문에 통합적인 것을 생각할 수 없다. 그러한 인지적 구조를 가졌기에 적절한 판단력이 생기기까지 부모의 양육이 필요한 시기다. 어덜키드를 만들어 놓고 어른이 더 좋아하는 것은 아닌지, 어른의 소비문화가 가져오는 또 다른 얼토당토않은 유행은 아닌지 생각해볼 시점이다. 아이는 아이다워야 심신이 건강하고 행복하다.

 

이경희 경기도어린이박물관장

© 경기일보(www.kyeonggi.com),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댓글 댓글 운영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