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의 조건에 관해 탐구하는 학문’으로 되어 있다. 크게는 문학, 역사, 철학으로 요약되기도 하지만 이 외에도 미학, 예술, 언어 등 그 범위는 매우 넓다.
갑자기 왜 인문학인가. 요즘 군포에는 어느 때보다 인문학 열풍이 강하게 불고 있기 때문이다. 시 정책인 ‘책 읽는 군포’ 사업과 맞물리면서 시청과 크고 작은 도서관, 순수문학모임 등에서 인문학강좌가 많이 열렸고, 시민들의 호응 또한 대단히 높은 걸 확인했다.
얼마 전 문인협회에서 주관한 안도현 시인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시청 대회의실은 모여든 시민들로 빈자리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강의가 끝나고 몇몇 주부들과의 대화에 주책없이 끼어들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한마디로 ‘위로’였다. 내 삶에 대한 따뜻한 위로가 바로 인문학이었다고, 자기 성찰에 필요한 객관적 거리를 확보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김병후 박사의 강연에서 들은 이야기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데에는 두 가지 경로가 있다 한다. 도파민이 분출되는 쾌감 중추와 옥시토신이 분출되는 관계 중추인데 쾌감 중추는 술, 음식, 섹스, 성공 등 강렬한 쾌감이고 사랑의 기분, 스킨십, 여성의 수다 등은 관계 중추라고 한다. 인문학을 통한 행복은 아무래도 관계 중추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나는 정치인이다. 그렇다면, 인문학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사실 지금까지 인문학은 정치 영역의 밖에 있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정치의 오랜 과제인 소통과 공생의 부분에 있어서, 분석적이고 비판적이며 인간과 사회에 대한 성찰을 다루는 인문학이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고무적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껏 사회와 정치에서 무한 경쟁이니 선택과 집중이니 하는 것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이 ‘공생’이 아닐까 생각한다. ‘함께’라는 것을 통해 우리 사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개그 프로의 외침처럼 일등만 기억하는 세상은 삶을 각박하게 만든다.
학교폭력의 원인도 정의와 공생이 사라지고 일등만 기억해 주는 우리 사회의 모습 아니겠는가? 말이 살짝 다른 방향으로 흘렀지만 각설하고, 정치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이때 위에서 언급한 어느 주부의 말을 다시 되새겨봤다. 살아가는데 따뜻한 위로가 되는 인문학처럼 우리 정치도 모든 사람들에게 옥시토신이 분출되도록 할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김주삼 경기도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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