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베스트셀러를 통해 소개된 놀이문화에 대한 이야기가 회자되고 있다. 여기서 ‘놀이’는 직업이 없이 단순히 논다는 의미가 아니다. 앞만 보고 달려온 세대, 짜여진 업무 가운데에서 휴식이 사치라고 생각하던 세대에게, 논다는 것은 꽤나 낯설고 어울리지 않는 말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 휴식은 에너지를 재충전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하게 하며, 부드러운 교류를 가능케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놀이’에 대한 심도있는 논의는 내 몫이 아니다. 다만 놀이문화를 통해 현대인들이 쉴 수 있고, 재충전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본다면 놀이는 행태상으로는 ‘놀이’일 수 있지만, 의미상으로는 ‘쉼’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지 않을까.
우리는 앞으로 전진해야 한다는, 가난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어쩌면 쉼을 잊고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놀이방식도 일천하다. 아마도 ‘술’이 우리나라 대부분 40~50대 중년층의 놀이문화일 것이다. 그러나 정보와 아이디어가 상품이 되는 현대 사회에 있어서 이제 여가와 휴식은 더 이상 사치가 아니다.
다양한 놀이문화를 즐기면서 교류하고, 여가와 휴식을 가짐으로써 몸과 마음의 여유를 찾을 때, 보다 창의적이고 발전적인 에너지를 얻게 될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은 오히려 창조적인 사업의 원천이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노동운동의 역사는 노동시간의 단축에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5인 이하 사업장에까지 일주일 40시간 근로시간이 보장되고 있다. 그러나 노동시간이 줄어든다고 해서 그만큼 경제가 위축되거나, 개인적 생활이 궁핍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오히려 그 여가가 개개인의 개성을 찾을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보다 창의적인 생활을 가능하게 해주기를 기대할 것이다.
여가·휴식, 창의적 에너지 원천
얼마 전 어느 변호사님의 ‘텅빔’에 대해 쓴 수필을 읽은 적이 있다. 원자는 99.99%의 진공상태로 되어 있고, 우주 역시 전체 평균 밀도는 1㎥당 대략 수소원자 5개가 있을 정도의 극단적인 진공상태라는 것.
태양을 야구공에 비유하면 지구는 1㎜짜리 모래알에 불과하고, 명왕성은 더 작아서 6분의 1㎜에 불과한데 야구공 주위를 400미터 떨어진 위치에서 248년에 한 번씩 회전하는 셈이 되며,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들도 4광년 이상이나 떨어져 있다는 것. 이렇게 광할한 우주에서 먼지 위에 먼지같은 우리 소소한 인간들. 그러니 업무스트레스에 시달리더라도 텅빔을 생각할 여유를 가져보자는 내용이었다.
그러고 보면 ‘쉼’과 ‘텅빔’은 그 의미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오늘날의 경쟁사회에서 우리는 남보다 한 치라도 앞서기 위하여 마음의 여유를 가질 틈도 없이 내달려 오기만 했는지도 모른다. 또 우리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지나치게 채워넣기만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달리기만 한다고 해서, 또 채우고 또 채우기만 한다고 해서, 우리가 목표하는 바를 꼭 빨리 이루리라는 법은 없다. 게다가 행복한 인생을 꿈꾼다면 더더욱 거리가 먼 얘기가 된다. 오히려 때로는 그것이 무리한 판단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길을 잘못 들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경쟁사회서 비움의 여유 갖자
주위의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게 하고, 기대보다 작은 성과에 쉽게 좌절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몸과 마음은 쉽게 지치고, 이르지 못한 조급증과 채우지 못한 불안감에 늘 잠을 설칠 수도 있을 것이다.
대량생산을 위해 노동시간을 늘려야 했던 시대는, 이제 기발한 아이디어와 사회적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정보화 시대로 바뀌었고, 자본과 지식의 축적이 최고의 가치였던 시대는 이제 공유와 나눔의 원리가 지배하는 사회로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된 시대에, 바쁜 걸음을 잠시 멈추고, 짧게나마 ‘쉼’과 ‘텅빔’에 대하여 한번쯤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재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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