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 한때 상아탑에서 아카데미즘의 핵심으로 최고의 위상을 차지하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의 명칭도 인문대, 상경대, 법정대, 이공대, 의과대, 예술대 순으로 불려졌고 장안의 주요대학교의 인문대 건물들은 희랍의 대리석 신전을 연상하게하는 담쟁이 넝쿨 무성한 우람한 석조건물이었다.
그리고 그 강의실에선 은회색 머리의 노 철학교수가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강의하곤 하였다. 그러던 것이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부와 명예, 좋은 직업과 취직이 보장된 학문과 학과가 인기를 얻으면서 인문학은 점점 퇴조하고 그 자리에 법학이나 경영학, 의학, 공학 같은 학문이 최고의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갑자기 왜 인문학 바람인가. 민간부분에서 불기 시작한 인문학바람이 이제 공공부분까지 불고 있다. 바야흐로 인문학의 시대가 다시 열렸다.
인문학이란 것이 결국 사람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 사람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연구하는 학문, 더 나아가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제반 학문을 인문학이라 할 때 세상의 어느 학문인들 광의의 인문학에 속하지 않는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경기도인재개발원 소통의 인문학 과정 ‘미술과 인문으로 나를 깨우다’에 다녀왔다, 연초 경기도인재개발원 교육과정을 훑어 보면서 올해 나는 과연 어떤 교육을 받을 것인가 고민 고민 하는데 눈에 번쩍 뛰는 제목이 있었다. ‘미술과 인문으로 나를 깨우다’였다. ‘그래 공직사회에 인문학을 접목한다면 얼마나 멋진 세상이 될까’ 하는 상상을 하고나니 나에게 금년은 직무 직능교육보다 교양의 인문학 강좌가 더 필요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인문학의 대표격인 문(文)·사(史)·철(哲)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조금은 접할 기회가 있었으나 미술이나 음악은 문외한인지라 이번 기회를 이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길지않은 이틀과정이었는데 첫째 날은 철학과 역사중심 인문학, 둘째 날은 미술중심 인문학 강의였다.
첫째 날 담당교수는 동서양 공간을 초월하고 고대와 중세 근대 그리고 현대등 시간의 벽을 허물고 철학과 역사, 심리학과 문학 등 온갖 학문을 섭력하며 한가지 목표를 향해 빠른 속도로 질주해갔다. 박식한 강의라서 모든 것을 이해하기에는 나의 인문학적 기초지식이 상당히 부족했지만 그래도 이번 인문학 강의에서 얻은 소득은 공직자로서 유기체적 세계관, 존재론적 자연관, 조화론적 사회관 그리고 공유론적 인간관을 지니고 독립된 인간중심에서 통합된 전체 즉 생태 공존주의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둘째 날 미술 중심의 인문학은 나의 무딘 감성과 영혼에 샘물을 부어 다시 생명력을 불러일으키는 시간이 됐다. 고대 동굴벽화들, 미켈란젤로 ‘천지창조’, 얀반아이크 ‘아르놀피부부의 초상’, 카라모조 ‘의심하는 성도들’, 드라크루아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뭉크 ‘절규’, 고호 ‘별이 빛나는 밤에’를 비롯해 몬드리안의 차가운 추상 작품들과 잭슨폴락의 ‘빨간모델’의 회화, 자코메티의 조각에 이르까지…. 감상한 후 해설을 듣고나니 각 그림의 의미를 이해 할수 있었다. 그리고 보이지 않는 작가와 그림 자체와 조금씩 소통 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인문학은 따뜻한 학문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공직자들이 인문학 즉 인간성에 대한 깊은 성찰위에 공공 행정서비스에 나선다면 국민들에게 사무적으로 대하기보다는 좀더 따뜻한 시선으로 민원인을 바라보고 불편하고 어려운 서민들을 보듬어 안을 수 있을 것이다. 경기도인재개발원의 인문학강의 도입도 그런 취지가 아닌가 생각한다. 직무직능교육이 공무원에게 하나의 치료제라면 인문학강의는 알부민이라고나 할까.
서 대 운 가평군청 교육협력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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